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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라스푸틴의 몰락

러시아 제국의 ‘미친 수도승’ 라스푸틴은 항상 궁중에 불려가 왕비에게 자문을 해 주었지만 사는 곳은 세인트 피터즈버그의 쇠락한 허름한 동네였다. 여기서 그는 술을 마음껏 마시고 사창가에 수시로 드나들며 여인의 몸을 탐했다. 그로 인해 무수한 비난을 받았지만 왕비의 두터운 신임으로 인해 권력을 휘두르고 영향력을 끼치는 특권을 아낌없이 행사했다.

의회는 다시 라스푸틴 해임을 결의했지만 왕비는 이 건의를 무시했다. 마침내 유수포브 공자는 자기 스스로 라스푸틴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던 젊은이였다. 그는 동료 4명을 암살 모의에 동참시켰다.

1916년 12월 18일 아침, 유수포브는 라스푸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자기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여는데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라스푸틴이 미모의 여자에 약한 점을 이용해 자기 부인이 두통을 앓고 있는데 그를 만나길 원하며 치료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라스푸틴은 미끼에 걸려들었다. 참석을 약속했다. 공자는 기회가 쉽게 찾아든 사실에 대해 전율했다. 다음날 그는 집에 세간을 들이고 휘황한 장식으로 꾸몄다. 화덕에 불을 지펴 방안을 따듯하게 했다. 그리고 쏘시지, 치즈, 케이크와 여섯 병의 고급 포도주, 그리고 여섯 개의 잔을 마련했다. 음모자들의 한 명인 폴란드인 의사 라조베르트 박사는 독살용 독물은 가져왔다. 6명을 죽이기에 충분한 청산가리였다. 박사는 고무장갑을 끼고 청산가리를 분말로 만든 다음 초콜릿 케이크 3 조각 윗부분을 제치고 그 안에 넣었다. 나머지는 포도주에 섞었다. “이것 한 병이면 말 한 마리도 죽일 수 있겠군.” 음모자들의 한 명은 얼어붙은 네바강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라스푸틴이 죽으면 그 시체를 강에 던져서 증거를 인멸한 계획이었다.



박사가 운전기사로 위장한 후 유수포브는 자동차를 타고 라스푸틴에게 가서 그를 모셔왔다. 융숭한 대접에 만족한 라스푸틴은 방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가구를 만져보더니 찬장을 열어보았다. 긴장해진 유수포브는 차를 권했다. “차 한 잔과 함께 케이크를 드시지요.” 라스푸틴은 단 숨에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은 다음 또 한 조각을 청했다. 유수포브는 초조해 졌다. 이제 금방 죽어야 할 터인데. 시계를 들여다보니 25분이나 지나 있었다. 라스푸틴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셋 째 조각까지 먹었다. 음모자들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이 긴장했다. “포도주도 한 잔 드시지요. 크리미아에서 온 최상급 품입니다.“음, 목이 좀 마르군.” 라스푸틴은 포도주를 마셨다. 다시 한잔을 따라 주니 연달아 마셨다. 다음에는 라스푸틴 자신이 더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라스푸틴의 얼굴을 보니 음모를 알아차린 것 같이 보였다. 푸른 눈동자는 녹색으로 변해 있었고 몸은 한 자리에 굳어 있는 것 같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층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웬 이유인지 라스푸틴은 물었다.

독약이 든 케이크와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한 후 이미 2시간 반이나 지났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음모자 한 명이 권총을 들고 라스푸틴의 가슴을 향해 발사했다. 수도승은 괴성을 지르더니 앞으로 쓰려졌다. 의사가 5분 동안 검진을 한 후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음모자들이 마차를 준비하기 위해 마구간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라스푸틴이 일어나 유수포브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르려고 했다. 그 다음 수도승은 문 밖으로 나서 눈길로 비척거리며 걸었다. 총 소리 두 방이 울렸고 라스푸틴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음모자들은 라스푸틴이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해서 그의 시체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리고는 얼어붙은 네바강 속에 밀어 넣었다.

라스푸틴이 죽은 지 2년 안에 그가 예언한 대로 러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황제와 그의 가족은 모두 적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시체는 불에 타서 에카테린부르그 교외 한 광산에 버려졌다. 시신이 황제와 그 가족의 것으로 확인된 것은 소련이 망하고도 한참 자나서였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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