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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흑사병 창궐한 자파 시를 방문한 보나파르트’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제패하고 그곳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친 28세의 청년 장군 나폴레옹은 1798년 5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집트 정벌에 나섰다. 숙적 영국과 인도를 잇는 아프리카의 요충지인 이 지역을 차단할 목적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프랑스 군은 카이로를 점령하고 맘루크 왕조를 격파하면서 피라미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는 이슬람 편이고 단지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맘루크 왕조에서 해방시킬 목적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국민들은 단지 수동적으로 그런 주장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침입에 대항하여 중동의 강국 오토만 제국은 프랑스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터키인들이 이집트로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폴레옹은 1799년 13만 명의 프랑스 군을 이끌고 시리아로 진격했다. 우선 기습작전으로 거대한 성벽으로 둘려 쌓인 해안도시 자파를 함락시켰다. 자파는 현재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며 요충지인 텔아비브다. 이스라엘이 수립되기 훨씬 전인지라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은 모두 시리아의 속령이었다. 당시 자파 시에는 흑사병이 창궐하고 있어서 프랑스 군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공포에 싸여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도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적군들을 마구 살육했다. 수일간에 걸쳐 2천 5백 명에서 3천 명에 달하는 항복한 오토만 군인(대부분이 알바니아인들로 구성되었음)들을 해안가로 데려가 죽였다. 살인만이 아니라 무차별한 방화, 강간과 약탈도 자행했다.

자파 점령 직후 나폴레옹은 그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흑사병으로 흉흉한 인심을 달래고 공황상태에 빠진 프랑스 군인들의 공포를 경감시키기 위함이었다. 장군은 병원에 들러 한 시간 이상이나 병사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페스트균에 의해 겨드랑이 임파선이 붓고 곪아 터져 사망한 시체들을 옮기는데 몸소 거들어 도와주었다. 들뜬 병사들의 마음은 점차 안정되었다.

그런 다음 나폴레옹은 그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징집해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게 하고난 다음 오토만 제국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아코를 향해 북진하는 프랑스군을 돕게 했다. 두 달에 걸친 아코 시 포위작전에도 불구하고 함락되지 않았다. 자파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프랑스군을 따라 아코까지 번졌다. 나폴레옹은 이를 핑계로 삼아 철군을 결정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은 철수 시에 질병으로 인해 후퇴가 불가능한 병사들에게 아편을 주었다. 잡혀 굴욕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의미였다. 아편 복용으로 죽은 병사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진주한 오토만 군인들이 남아있던 프랑스 군 포로를 영국군에 넘겼고 그로 인해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병사들을 아편을 이용해 살해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의해 프랑스 함대가 괴멸되면서 이집트에 있던 프랑스군대가 고립되자 장군은 부하들을 뒤에 남겨둔 채 혼자 이집트를 탈출해 파리로 돌아왔다.



1801년 그는 여론을 움직여 제1통령에 선출되었는데 이집트에 남아 있던 프랑스군은 그 해 영국군에 항복하고 말았다. 1804년 10월 그는 의회에 의해 추대되어 나폴레옹 황제 1세로 등극했다.

원래부터 나폴레옹은 선전술에 능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명성을 떨치던 화가 안토완-장 그로(Antoine-Jean Gros, 1771-1835)에게 자기의 치적을 그림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는 종군화가로 활약했기 때문에 전부터 서로 잘 알고 있던 사이였다. 그가 그린 ‘흑사병 창궐한 자파 시를 방문한 보나파르트’는 1804년 파리 살롱 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국적인 중동 도시를 배경으로 한 세로 5 미터, 가로 7 미터인 대작이었다. 배경에 보이는 요새에는 프랑스의 삼색기가 휘날린다. 보나파르트는 왼손의 장갑을 벗고 손을 들어 환부를 보이고 있는 환자의 겨드랑이 임파선을 만지고 있다. 뒤에 서 있는 부관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터키 의사는 무릎을 꿇고 환자의 상처를 칼로 찌르고 있으며 프랑스 의사는 병이 들었는지 그 앞에 쓰러져 있다. 왼쪽에는 노예를 거느린 아랍 인이 환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으며 바닥에는 여러 명의 환자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로 화가는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이 무자비하게 부하들을 버린 장군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은 자비심이 많은 인물로 그렸다. 후에 화가 그로는 자신이 이런 선전화를 그린 사실을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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