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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세상 보기] 무릎 이야기

(1) 무릎과 무릎사이. 1984년은 내가 살아온 세월중에서도 유난히 생각나는게 많은 한해이다. 무엇보다도 ‘외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되어 처음으로 그리고 영영 부모님 슬하를 떠나게 된 해가 84년이다. 그해 개봉된 한국영화중에 <무릎과 무릎사이> 라는 작품이 있다. 감각이 뛰어난 이장호감독의 작품이니 만만찮은 영화였겠지만 미성년자관람불가였다. 불가든 뭐든 사춘기라 호기심과 호르몬이 넘치던 친구들은 요령껏 보러들 갔다. 뭐 무릎과 무릎사이엔 ‘과’가 있는거 아닌가.

같은해에 난데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가 시내극장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어떤 여고 단체관람하는데 유일한 남학생으로 끼어 보게되었다. 시골극장은 길어야 일주일이면 상영이 끝나는데 아마도 마지막날에야 극장에 갈수있었던것 같다. 여고 인솔교사선생님께 이 영화 꼭 봐야한다고 사정사정해서 허락은 받았지만 조건은 한쪽 구석에 따로 서서 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것이 정말 1939년 영화인가 하고 입이 딱-벌어져서, 그리고 초등학교때 나의 첫사랑(?)이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만큼이나 예쁜, 어쩌면 쪼금 더 예쁜 여배우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좀 얼떨떨한 상태에서 무려 4시간을 서서 보았다. 젊은 무릎과 등허리 덕분이다. 시간이 되면 YouTube로라도 한번 볼까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말고 <무릎과 무릎사이> 말이다. 명치 깊숙한데서 자꾸 뭔가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내 인생의 봄날-고1때 그냥 지나쳤던 영화...

(2) 무릎이 고장났다. 수십년간 생각없이 걸어도 앞뒤좌우로 잘 움직여주던 나의 무릎이 말이다. 뛰거나 걸을때 왼쪽, 오른쪽 걸음을 일일히 내딛어야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성가신 일일까? 그런데 심장을 필두로 하여 내 몸에는 알아서 움직여주는 신통방통한 기관이 꽉 차있다. 그런데 그걸 깨닫고 감사하게 생각하는건 꼭 고장이 나고난 다음이다.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는데 무릎이 시원찮으면 할수가 없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 시작한 운동인데 내게는 Life-changer라고 할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운동이다. 만약 내가 대통령후보라면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테니스 그리고 기타를 배우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할 것이다.

작년부터 아픈것은 아닌데 왼쪽무릎이 ‘뭔가 이상’했다. 나름 조심한다고 근1년간 테니스는 개점휴업…다행히 조금씩 나아지곤 있지만 예전에 코트를 가로질러 공을 쫓던 즐거움은 이제 포기해야 할듯하다.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고 연골도 재생성이 잘 않될테니 별것 아닌것에도 부상을 입기쉽고 회복도 더디다. 그렇지만 꼭 가젤영양처럼 뛸수있어야만 테니스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동네 테니스클럽의 원로멤버들은 공이 2미터만 옆으로 가도 “Too Good!”그러면서 쫓아갈 생각조차 않는다. 하지만 어찌나 즐겁게 운동을 하시는지 모른다.



(3) 슬하(膝下). 글자 그대로 무릎 아래라는 뜻인데 무릎옆에 착 붙어있는 자식을 의미한다. 우리집엔 외아들만 둘이다. 두 아이 사이에 터울이 15년이나 지기때문이다. 지난 2월에 20살이 된 큰 아이는 이미 내 슬하를 떠나 ‘외지’에서 열심히 공부중이고 3월중에 5살이 된 늦동이가 엄마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누구나 첫아이 키우기가 제일 힘들었다고, 그래서 다음 아이부터는 포기(?)하고 쉽게쉽게 간다고들 한다. 큰 애를 키우며 느낀 것은 할 아이는 훼방을 놔도 할것이며, 않할 아이는 종일 업고다니며 시켜도 않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부모마음대로 않될거라면 그냥 아이를 틈나는대로 안아주고 행복하게 해주는게 낫지않을까? 나는 두팔로도 부족해서 무릎까지 동원해가며 내 무릎과 무릎사이에 꼬마를 꼬옥 안아준다. 하지만 절대로 버릇없이, 편하게만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테니스, 축구, 하이킹, 마당에 풀뽑기 등 아이와 할일이 많으니 나의 왼무릎아 얼른 원상복귀해주렴!




최영출 (생명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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