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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노튼 황제(II)

그는 각 언론기관에 통보를 내려 스스로 황제가 된 후 국제연맹을 결성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일단 왕국을 선포한 다음이라 입법기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미국 의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연방 의회가 자기 말을 듣지 않자 의회는 그대로 존재하라고 내부려 두었다. 대신 공화당과 민주당을 해산하라는 칙령을 발동시켰다.

1872년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현수교 다리와 터널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허황된 꿈은 1930년대 베이 브리지 건설로, 또 1974년대 BART 튜브 건설로 현실화되었다. 많은 작가들도 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생존 시 이 도시에 살았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란 작품에서 황제의 모습을 묘사했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92년 발표한 ‘Wrecker'란 작품에서 황제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는 엉뚱한 정치적인 식견을 가졌지만 대부분이 비폭력적이었다. 남북전쟁으로 찢겨진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천주교와 개신교에게 자기를 교회의 수장으로 안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1860년과 70년 대에는 이 도시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극심했다. 폭동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자주 발생했다. 그는 박해받는 중국인들 앞에서 이들을 감싸며 백인들을 향해 폭력이 멈칠 때까지 주기도문을 외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정신병 명에 대한 후세의 의견은 조울증(Manic Depression)과 망상장애(Paranoid Disorder)로 갈린다. 조울증의 경우 치료를 받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과대망상의 주기에서 벗어나고 우울증에 들어간다. 그래서 조울증을 일명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라고 부른다. 그런데 노튼 황제의 경우 21년간의 ‘통지’기간 중 한 번도 우울증에 빠진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의 병명은 ‘망상장애’쪽이 아닐까 한다.

1880년 1월 자연사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려고 나섰다가 변변한 응급처치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그랜트와 캘리포니아 가 사이)에서 급사했다. 그는 궁핍한 상태로 운명했다.

그러나 주요 언론기관이었던 크로니클 지는 일면에 큰 글자로 ‘Le Roi est Mort'(왕이 서거하다)라고 장식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의 빛의 도시; 파리란 별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틀 후에 거행된 장례식에는 부자나 거지, 목사나 좀도둑, 귀부인과 창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2 마일의 장의 행렬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23만에 불과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미합중국 수립 이래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황제를 이렇게 정중하게 보낸 것이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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