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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바보들의 배

1490년 경 네델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년-1516,)는 '바보들의 배'란 유화를 나무판 위에 그렸다.
이 화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생년월일도 모르며 성격이나 사상, 미술에 대한 의견 등을 엿 볼 수 이쓴 편지나 일기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다. 알려진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의 조상이 독일의 아켄 지역에서 왔으며 현재 네델란드 남부에 위치한 브라벤트 공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일생을 살았다.
집안에 화가가 많았고 그림 그리기는 아버지나 삼촌에게 배운 것 같다. 화가로서의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서 외국으로 부터 그림을 의뢰받았는데 지금까지 약 25점이 그의 그림으로 간주된다. 그는 성당 제단을 장식하는 나무 패널위에 그려진 3개의 그림이 서로 맞붙은 3연작 화를 즐겨 그렸다. 종교적인 그림이었는데 특이한 색채로 상상속이지만 상세하게 묘사한 풍경, 이상한 괴물, 유령, 텅 비어있는 눈과 특이한 몸을 가진 사람 등 무섭고 악몽같은 지옥세계를 많이 다뤘다. 전통적인 플랑드르 화풍은 매끄러운 표면을 선호하지만 그의 그림은 거친 표면을 가져서 무서움이나 잔인한 모양 그리고 악덕과 범죄등을 다욱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바보들의 배'도 3 연작화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아직 남아서 현재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보'들이란 물론 정신박약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보슈가 그림을 그리던 초기 초기 르네상스 시절에는 정신병으로 인해 길거리를 떠도는 환자들도 정신박약자들과 구별하지 않고 모두 ‘ 바보’로 불렀다. 그들을 격리할 시설도 없었고 치료하는 방법도 몰랐다.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란 이들을 배에 싣고 도시로부터 떠나보내면 바다로 흘러가 배가 난파될 때 이들이 몽땅 물에 빠져 몰살하게 하는 것이었다.
보슈의 그림에는 12명의 ‘바보’들이 배에 타고 있다. 배 꼭대기에는 나무 사이에서 남자 가면이 무표정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마 죽음을 상징하는 듯. 상태가 약한 듯 보이는 배는 모든 악덕을 품고 있던 당시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배를 짓고 있는 노는 주방에서 쓰는 요리용 나무 숟가락인데 배가 포도주 위를 흘러가면서 숟가락은 술을 퍼 담는 역할을 한다. 승객들 중에는 승려와 수녀가 앉아 있는데 그들 옆에는 체리 한 접시가 놓여있다. 체리는 지금 영어에서도 처녀막을 의미하듯 육체적 탐욕을 나타내고 있다. 한 대식가는 돛대에 걸린 통 거위 구이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여러 승객들은 술을 마시는데 만 정신이 빠져 있다. 배는 바람이 부는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지만 배가 가는 방향에 관심을 두는 승객은 하나도 없다.
‘바보들의 배’는 실제로는 현실의 상징이고 승객들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과 파멸을 도외시하고 사리에 집착하면서 아우성거리며 서로 싸우는 현대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슈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효시라고 재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1962년 미국의 작가 캐서린 앤 포터(Katherine Anne Porter, 1890-1980)는 ‘바보들의 배’란 소설을 발표해서 주목을 끌었다. 그녀는 20세기 중반 도로시 파커와 함께 미국 여성작가로 쌍벽을 이루었다.
1933년 멕시코의 베라 크루즈에서 출발해 26일간의 항해 끝에 독일의 브레멘하벤 항구에 도착하는 독일 선박회사 소속의 낡은 여객선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묘사했다. 하등 선실에는 설탕 시장의 붕괴로 인해 쿠바에서 실직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스페인 출신 노동자 876 명이 가축같이 실려 있다. 포터는 원래 단편작가인데 이 소설이 유일한 장편이다.


그녀는 1931년 배를 타고 독일까지 여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동승했던 승객들의 모습과 행동을 스케치같이 관찰하여 친구들에게 편지로 적어 보냈다. 후에 미국에 돌아왔을 때 편지들을 일일이 회수하여 이 작품을 만든 것이다.
상층 선실에는 단편적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을 엮어 세태를 꼬집는 우화적인 소설로 만들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뻐기며 멸시하고 시기한다. 그들이 도착할 독일은 금세 나치스의 통치에 들어가 암울한 미래가 유럽 대륙에 덥힐지 전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이 소설은 1965년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되어 상당히 좋은 비평을 받았다. 흘러간 명화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알려졌던 비비언 리나 시몬느 시뇨레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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