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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허만 멜빌의 인생

19세기에 활동한 미국 작가 허만 멜빌(Hetman Melville, 1819-1891)은 뉴욕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앨런 멜빌의 여덟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의 집안은 원래 보스턴 지역에서 잘 알려진 가문이었다.

아버지는 주로 유럽으로부터 잡화류를 수입했던 것 같다. 당시 신문에 게재된 광고물들을 보면 실크 조끼, 벨트와 시계용 리본, 말가죽 장갑, 화려한 스카프, 실크로 된 탄력 있는 여성용 가터, 조화, 향수 같은 고급품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미국 독립 당시 한 역할을 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어린 손자에게 자기가 보스턴 티 파티에서 입었던 인디언으로 가장했던 옷을 보여주고 또 찻잎이 들은 작은 병을 직접 보여주었다. 어린 멜빌을 할아버지를 찾아 보스턴을 자주 방문했고 아버지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어린 멜빌은 신실한 유니태리언 신도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신의 위엄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더 중요시했다. 한편 어머니는 칼뱅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개혁 더치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경 이야기를 많이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멜빌에게 성경에 나오는 선악의 대상물은 현실에서의 선악을 구분하는 척도였다.



멜빌은 5살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7살에 성홍열을 앓은 후 시력이 영구히 악화되었다. 읽기 그리고 이해력에도 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살에는 반에서 급우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소개하는데 일등상을 받았다.

그는 모험을 위해 1839년 ‘어쿠슈넷’이란 포경선의 선실 보이로 취직했다. 이 배는 케이프 혼을 지나 태평양을 향했다. 다음 해 그는 마크사스란 작은 섬에 선장의 허락 없이 하선했다. 이 섬에는 ‘타이피’란 식인종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머물던 3주간 그들은 허만에게 잘 대해주었다.

이 섬을 바탕으로 ‘타이피’란 소설을 런던에서 발간했는데 평판이 아주 좋았다. 그 속편으로 자신의 폴리네시아 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오무’란 작품도 발표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거기 까지였다.

미국으로 돌아와 매서츄세츠 주 최고 재판소 소장의 딸인 엘리자베스 쇼와 결혼했다. 3년간 뉴욕 생활을 마친 후 그는 ‘애로우헤드’란 농장을 샀다. 그 옆에는 작가 너대니얼 호손이 살고 있어서 둘이는 친구가 되었다.

당시 멜빌은 ‘모비 딕’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호손이 적극 작품화하라고 밀어주었다. 고래잡이에 대한 너무 자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 대신 우화적인 요소를 강조하라면서.

멜빌은 호손에게 자기에게는 에너지가 넘쳐흘러서 아침 새벽부터 저녁 5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소설을 쓰고 있으며 “내게 잉크스탠드로 베수비우스 화산의 분화구를 보내주오”라고 기원했다.

그러나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그들은 ‘타이피’나 ‘오무’같은 소설을 기대한 것 같다. 실제로 ‘모비 딕’을 읽어보면 상당한 부분이 자세한 고래잡이 백과사전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여간 멜빌은 이 소설을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 작가 호손에게 증정했다.

1852년에 발표한 ‘피에르’란 소설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지은 고틱 로맨스면서 심리소설에 속한다. 일반인들의 반응은 아주 실망 적이었다. 심지어 뉴욕의 한 신간서적 평론집은 ‘허만 멜빌은 미쳤다.’라는 선동적인 제목으로 이 소설을 소개했다.

1855년 멜빌은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써서 명성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다. 수입은 급락했으며 결국 경제적으로 돈 많은 장인의 신세를 졌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 여행을 했고 어려서부터 원했던 성지까지 방문했지만 별로 큰 영향은 받을 것 같지 않다. 그는 예루살렘이 그저 차갑고 회색인 도시로만 보였다. “왼쪽에도 돌무덤, 오른쪽에도 돌무덤.”

그는 마지막 30년을 뉴욕에서 세관검사원으로 일을 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봉급으로 가족을 먹어 살리는 데는 충분했다. 세관원은 모두 썩어 있기로 유명했다. 멜빌만이 오직 청렴한 직원으로 알려졌다.
‘모비 딕’에 적은 인생관 한마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견디기 힘든 세상 생활인 것이다.” 그래도 그가 죽었을 때 ‘빌리 버드, 선원’이란 미완성 작품이 남아 있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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