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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허만 멜빌의 정신병

미국 작가 허만 멜빌을 소개하면서 그가 여러 번 우울증에 빠졌었다는 언급을 했다. 가정 뚜렷한 시기는 ‘피에르’란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자신은 더 이상 작가로 성공할 자신감을 잃었을 때였다. 유럽 관광이 아무런 흥미를 자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성지 예루살렘조차 단지 돌무덤으로만 보일 정도였으니까.

사실 그의 우울증은 대표작인 ‘모비 딕’의 서두부터 시작된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 이 소설의 화자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었지---굳게 다문 입언저리가 주름에 잡혀 점점 패일 때마다, 내 마음 속에 11월의 축축한 가랑비가 뿌릴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걸음을 장의사 앞에 멎고 도중에 만난 행렬의 뒤를 쫓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이런 때야말로 한시바삐 바다로 가야만 할 때라고 나는 결심한다. 그것만이 나에게는 피스톨과 탄환의 대치물이 될 뿐이다. 케이토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자기 몸을 단검에 던진다. 나는 조용히 배에 오른다.”

우리는 이 화자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발생한 일인지도. 성경에서 이슈메일은 아브라함의 서자로 집을 뛰쳐나온 인물이다. 화자는 남태평양 출신 작살 전문가와 함께 포경선 페쿼드 호에 타기로 서명한다. 항해가 시작된 며칠 후 독자들은 아주 다른 인물과 마주친다. 마치 막베스, 욥, 밀턴의 악마를 합친 것 같은 에이헙이란 이름의 선장이다. 멜빌은 이 선장의 이름을 이방인의 태양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왕의 이름을 따서 사용했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항해의 목적이 전번 대결에서 자신의 다리를 잘라간 모비 딕으로 알려진 하얀 향유고래를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밝힌다. 선장은 마스트 끝에 금덩어리를 장식해 놓고서 이 고래를 처음 발견하는 선원에게 줄 상품이라고 밝힌다. 일등항해사인 스타벅은 선장에게 재고하기를 간청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비 딕은 포경선으로 돌진해 배를 침몰시킨다. 선장은 물로 가라앉는다. 모비 딕에 박힌 작살을 몸에 묶은 채로. 선원들은 모두 선장과 함께 최후를 마친다. 오직 화자인 이슈메일만 근처에 있던 배에 구원을 받아 살아남아서 이 거대한 서사시를 전해준다.



이미 밝힌 대로 누가 이슈메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굳게 다문 입 언저리가 점점 패일때마다, 축축한 가을 날 장례식장 앞에 발을 멈추고 장례 행렬을 목적도 없이 따라가며 바다로 가는 길이 피스톨과 탄환의 대치 물로 생각할 정도다. 이슈메일은 실제로 허만 멜빌 자신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에게는 기분이 지나치게 항진되는 조증의 증상도 보인다. 그가 ‘모비 딕'을 집필할 때 친구인 호손에게 자기는 글을 쓰는데 정신이 빠져 아침부터 저녁 5시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글만 쓴다고 고백했다. “내게 콘도르의 깃털을 달라.( 더 빨리 글을 쓰기 위해서.) 잉크스탠드에 베수비우스 화산의 분화구를 보내 달라. 친구여 제발 내 손을 잡아다오.(너무 손놀림이 빠르다)”라는 호소는 창작력이 너무 차고 넘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펜으로 적어가기에는 폼페이 시를 화산재로 멸망시킨 화산의 분화구만큼 큰 잉크스탠드가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면서도 가끔 그는 자살의 충동을 친구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멜빌은 우울할 때 사물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과 계시의 빛은 깊은 우울증만큼 인간의 진실에 대한 통찰을 주지 못한다. 우울증 환자에서는 불빛이 잠시 깜박거릴 때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불이 꺼지면 어두움이 더욱 뚜렷해진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게 보이는 우울 증상을 통해 그들은 고양이처럼 모든 사물을 훤히 꿰뚫어 본다. 과거에 우리를 속이던 힘은 멈춰진다.”

허만 멜빌이 조울증(양극성 장애)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가 남긴 여러 편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분명히 조울증 증상을 갖고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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