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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에이헙 선장의 정신병

에이헙 선장은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포경선 선장의 이름이다. 그는 포경선 선원을 모집한 다음 항해가 시작되자마자 그들에게 이번 항해는 지난 번 행해 때 자신의 다리 한쪽을 잘라간 흰색의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 딕’을 잡아 죽이려는 목적이라고 선언한다.
선장에게 ‘모비 딕’은 악의 화신이다. 반면 에이헙은 악을 끝까지 추적하여 박멸하려는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다. 그는 마스트 꼭대기에 금덩이를 장식한 다음 ‘모비 딕’을 처음 발견하는 선원에게 상으로 주겠다고 공언한다. 오래된 항해 끝에 ‘모비 딕’이 발견되는데 이 고래는 작살을 맞은 채로 포경선으로 돌진하여 배와 작살을 움켜 쥔 선장, 그리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 선원 30명을 수장시킨다.
작가 허만 멜빌은 1951년, 당시 가깝게 지내던 너대니얼 호손에게 자극을 받아 전력을 다해 그의 대표작이 된 ‘모비 딕’ 집필에 정력을 쏟았다. 그는 집필을 마친 후 “나는 사악한 소설을 완성시켰는데 나 자신은 결점이 없는 순한 양과 같이 느낀다.”라면서 이 소설을 호손에게 증정했다. 이 소설은 당시 ‘남태평양 포경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야생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로 소개되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별로 없어서 책도 생전에 겨우 3천부만 팔렸을 뿐이다. 독자들은 아마도 남태평양을 무대로 해서 선원과 야생의 원주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 이야기 같은 것은 바랐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일생을 통해 그저 그런 작가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 소설은 20세기에 들어서 멜빌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멜빌 다시 찾기’ 행사에서 발굴되어 해양소설의 금자탑으로 알려졌고 작가도 미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작가들의 반열에 올랐다.
멜빌은 젊은 시절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었다. 소설은 당시의 경험과 선원으로 남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가장 큰 영향은 1839년 레이놀즈란 사람이 발표한 ‘모카 딕: 또는 태평양의 흰 고래’에서 받았다. 이것은 흰색 향유고래에 대한 기사로 여러 차례 작살을 맞고도 생존하여 바다를 지배하고 배들을 침몰시키며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 갔다는 전설적인 고래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에이헙 선장과 고래라는 인간과 자연 간에 벌어지는 스릴 있는 투쟁 이야기로 알려졌다. 그 전에는 골드러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었는데 해양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황금이 고래고 대치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래를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주어 신들에게 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원형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20세기에 대두된 전체주의 독재자로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학자는 에이헙 선장의 행동을 상실이 초래한 반복적인 행동으로 상실의 경험은 심리적 퇴행을 초래하여 어린 시절에 경험을 계속 반복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보았다.
이 소설은 심리소설로도 알려져 있는데 작가는 소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에이헙 선장은 거의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한 뒤 이를 초래한 고래에 대해 심한 복수심을 지녔다. 복수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인해 선장은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지적, 영적 장애를 겪는 자신을 모두 이 고래에 동일화한 것이다. 자기 눈앞에서 움직이는 고래는 인간이 고통을 받는 모든 악이 구체화된 것이다.” 이런 악과 맞싸워 이기려 하지만 악은 외부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도 형성되어 있었다. 결과로 외부의 악을 박멸하려다가 자기 자신과 선원들의 파멸로 이른 것이다.


에이헙 선장은 병적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편집증이 있으면서 강한 자기애 성향을 보인다. 그는 숙명적이며 정열적인 파괴-건설을 위한 메시아적 사명감을 지녔다. 자신의 이상을 극도화해서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는 자신이 마치 신이나 된 듯 타인들의 맹종과 충성 그리고 복종을 강요한다. 투쟁심에 도취되어 이것이 자기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모른다.
현대 정신과의 눈으로 관찰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편집 장애-Paranoid Disorder, 일명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에 속한다. 여기에는 피해망상증, 애정망상증, 질투망상증, 그리고 과대망상증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에이헙 선장의 경우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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