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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바이런 경의 말년

1816년 4월, 고국을 영원히 떠난 바이런은 벨기에에 들려 나폴레옹의 격전지 워털루를 방문한 다음 라인 강을 거쳐 올라가 스위스의 제네바 호숫가에 정착했다. 거기서 바이런은 이웃에 살던 당대 최고의 시인 퍼시 셸리를 만났다. 두 시인은 이야기를 나누고 뱃놀이와 낚시를 함께 했으며 독서를 같이 하고 서로의 시를 읽고 평하면서 아주 가깝게 되었다. 그들은 일생 친구가 되었으며 서로 시인으로 존경했다. 셸리의 부인 매리 고드윈의 의붓동생 클레어 클레어먼트도 그들과 함께 했는데 바이런이 영국에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아는 사이였다. 결국 클레어먼트는 바이런이 아이를 임신하여 알레그라란 딸을 낳았다.

당시에 쓴 시에서 ‘인간은 반은 먼지며 반은 신이다. 가라앉을 수도, 비상할 수도 없다.’라고 말해 인생의 가변성, 허무함 그리고 낭만주의 정신의 좌절을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의 증폭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1817년 겨울을 나기 위해 베니스로 갔다. 그때 기분이 항진되고 창작욕이 넘쳐서 흥분되고 들뜬 가운데 시 창작에 몰두했다. 한편 가을에 접어들면서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습관이 재발되었다. 포목상 주인집 여자, 그리고 빵집 여주인과 같은 여인들과도 염문에 빠졌다. 당시 그의 모습을 목도한 셀리 시인은 “그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활기에 차고 행복에 넘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라고 적었다. 1818년 여름동안 자신의 경험과 직접 관련된 사실을 다룬 풍자시 ‘돈 주안’의 제1편을 완성했다. 다음 해 2월 베니스에서 매년 열리는 카니발에 참가하여 들뜬 나머지 열흘이나 계속해 아침 7시까지 잠자리에 들이 못했다.

그 무렵 바이런은 19세의 젊은 테레사 구이치올리 백작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50대의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는데 남편이 그녀를 데리러 올 때까지 베니스에서 동거했다.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그에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테레사의 아버지와 오빠와 친하게 되어 그들의 소개로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꾀하는 비밀혁명단체에 가입했다. 이 단체에 무기를 공급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공급했다.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테레사는 이혼했다. 한편 시인 셸리는 1822년 물에 빠져 익사했다.



1823년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제노아에 체류했다. 백작 부인과 동거했지만 제노아에서의 생활이 따분하다고 실증을 느꼈다. 마침 오토만 제국에 항거하여 독립을 꾀하는 런던의 그리스 위원회가 파견한 밀사가 그를 접촉하여 도움을 청했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지만 그리스 함대를 무장하기 위해 4천 파운드를 제공했고 스스로 제노아를 떠나 그리스로 갔다. 터키인들이 점령한 레핀토 요새를 공격하는데 참여해서 포병대 발사 전문가를 고용했고 군대 경험이 없는데도 부대를 통솔하며 비용을 대었다. 한편 우울증이 악화되어 자신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잠을 자지 못하면 결국 죽거나 미칠 것인데 나는 수천 번을 죽을 것이다.’

1824년 1월 22일 ‘36회 생일에 붙여’라는 시를 썼다. “ 남들의 심장이 뛰지 않으니/ 내 심장도 멈추어야 한다./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그러나 사람을 하게 해 다오./ 내 날들은 이미 노란 잎사귀같이 바랬으며/ 사랑의 꽃과 열매는 사라졌다./벌레, 부패, 그리고 탄식만이/오직 내게 남겨진 것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옴을 예감한 듯하다.

병상에 눕자 당시 만병통지 치료인 사혈(瀉血)을 받아 많은 피를 흘리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한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열병에 걸렸고 의사가 아직도 고집한 사혈을 받다가 사망했다. 생일이 지나고 석 달 만이었다.

그는 이후 그리스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시신은 영국으로 돌아와 대영제국에 공을 쌓은 사람들을 위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악명으로 인해 사원의 감독이 거부했다. 그래서 뉴스테드에 있는 가족 묘지의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145년 뒤인 1969년 그리스 왕실의 배려로 그리스에 있는 백색 대리석 석판이 옮겨져 드디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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