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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가이드] LA다운타운 아트 디스트릭트

앰버 서 / 뉴스타 부동산 명예 부사장

한때 포도밭, 아방가르드 문화의 본거지
홈리스촌서 콘도·아파트 단지로 변화 중


한 인간은 생로병사에 그 유명을 달리하지만 우리의 건축물은 훨씬 유기적으로 사용주체에 순응하면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살아남는다.

맨 처음 아트 디스트릭트를 방문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여기가 정말로 남가주 제1의 도시, LA다운타운의 일부란 말인가.' 인도의 반쯤은 홈리스들의 낡은 텐트로 점령당하고, 주변에는 퇴색한 건물과 텅 빈 창고들 투성이었다. 금시라도 홈리스들로 가득 찰 것 같이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아트 디스트릭트에는 건물벽에 벽화가 많다. 앤서니 퀸, 누운 모나리자, 형형색색의 기하학적 또는 초현실적인 벽화는 이곳이 아방가르드 문화의 본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19세기 이곳은 포도밭이었다. Jean-Louis Vignes가 1831년 프랑스에서 LA로 이민 오면서 남가주에서 찾아낸 가장 완벽한 포도밭이 현재의 아트 디스트릭트이다.



그 후 철도 터미널로 운수, 제조업의 기지로 탈바꿈하면서 산업화되고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그러나 트럭산업이 시작되면서 거미줄처럼 좁은 도로는 발전의 걸림돌이 됐다. 아트 디그트릭트는 결국 넓은 도로망을 가진 주변 도시들에게 도태되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잊힌 이곳을 1970년대에 가난한 예술가 집단이 재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활환경은 열악했고 조닝도 맞지 않아 이주는 아주 은밀히, 불법적으로 진행되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난다고 했던가? 어찌 됐든지 갤러리는 계속 오픈을 했고 아방가르드 문화의 메카가 되었다.

결국, LA시는 AIR program(1981)으로 예술가 거주허가, Adaptive Reuse Ordinance(1999)를 통과시키면서 예술가가 아닌 사람까지도 거주를 허가하기에 이르러 아트 디스트릭트는 도시재개발의 단초가 되었다.

2010년을 지나면서 아트 디스트릭트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낡은 건물은 역사적 건물로 지정되어 보수, 내부 리모델링을 하여 로프트,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이 되고 남가주 건축대학(SCI-Arc)이 이전해 왔으며, 도로변 상점들이 폐점한 후에도 와이어 구조의 셔터 문이 가게 내부의 환한 빛을 거리로 쏟아내면서 더는 홈리스들의 어두운 침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붉은 벽돌의 비스킷 빌딩, 바커스 웨어하우스는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럭셔리 콘도미니엄으로 재탄생했고,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지어진수영장에서 보는 풍경은 멀리 다운타운 마천루를 배경으로 한 폭의 컨템퍼러리 현대미술을 보는듯하다.

아직도 진행중인 대형 쇼핑센터와 아파트 신축공사 등은 이제 주민들에게 그린개발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근대를 맞으면서 프로메테우스 시대를 꽃피웠다가 디오니소스의 반격을 받았다. 이제 헤르메스 시대가 왔다. 데카르트의 명제는 산업사회를 열었고 곧 니체의 반격을 받았으며 이제 현대의 헤르메스, 빌 게이츠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3가에 있는 벽화 속 날개 투구를 쓴 헤르메스가 긴 세월 흥망성쇠를 거친 아트 디스트릭트의 미래를 다시 열고 있다.

▶문의:(949)326-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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