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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자화상 그리기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자화상' 전문

한번쯤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 제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진정한 나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다. 제 얼굴 그리기는 얼굴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제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 대한 연민과 미움이 교차할 것이고 자신이지만 타인 같아 낯설기만 한 인간 하나를 만나게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일은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다. 누구나 자기 연민이라는 자기애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모가 난 부분은 변명을 하고 싶고 잘못된 부분은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처해진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기도 할 테니까.

우리는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지 않았을 뿐 살아온 날들 하루하루가 자기 얼굴 그리기였다. 24절기를 순회하는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제 얼굴을 만들어 왔다. 예상했던 모양새가 아니어서 난감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란 내가 만들어 온 나다. 늘어지는 눈매나 골이 깊은 미간은 탐탁치는 않지만, 시선에 편견이 있고 허점투성이의 못난 부분이 많지만, 그것조차도 함께해온 시간의 결과물인 내 작품이다.



1월이 되면 새로운 화폭에 새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지난해에도 그 지난해애도 나의 그림은 미완인 채로 남았다. 그럼에도 새 도화지를 꺼내 어떤 그림을 생각한다. 운명의 방향을 쥔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든 개의치 않고 나만의 화폭을 완성해보리라는 다짐 같은 걸 해본다. 무엇이 나에게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아닌 다만 거기에 채워야 할 공간이 있으므로 붓질을 한다는 약간은 무모한 설렘을 억지로라도 지니고 싶은 것이다.

요 며칠 감기 몸살을 앓았다. 감기란 추운 계절이 수시로 거는 태클이다. 그러니 앓고 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점점 감기도 겁이 난다. 자꾸만 심적 왜소함을 갖게 되는 모습이 생의 언저리로 밀려가는 것 같은 위기감을 들게 한다. 용기라거나 희망이라는 묵직한 명사 앞에 잔뜩 주눅이 든다. 지금의 내 자화상은 분명 형편없는 졸작임에 틀림없다.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누구나 제 얼굴을 완성해야 한다.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 폭의 자기 모습을 남기게 될 것이다. 무력하게 밀려가다 절벽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될 건가. 유연함 없이 옹졸하고 편협한 모습으로 남을 건가. 생은 꼭 공통분모를 찾을 필요는 없지 싶다. 내가 선 곳이 척박한 불모의 땅이라면 선인장을 키우면 그것으로 족하다.

자화상을 그릴 때 조심해야 하는 일은 자기 연민이다. '세상에 나처럼 고생한 인간은 없다'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 정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엄살 피우지 말아야 한다. 나를 부축하던 지지대를 다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면 아마도 참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해마다 1월이 있다는 것은 복이다. '다시'라는 시작의 말은 모든 나약한 것들을 결집시킨다. 다시 또 출발선에 서 본다. 출발 신호를 듣고 첫발을 내딛는 마라톤 선수의 긴장감으로 느슨해진 근육을 당겨봐야겠다. 시작이 반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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