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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떠나 보낸다

오래 전 한국을 방문하면서 어릴 적 다니던 중학교에 가본 적이 있다. 그 곳엔 국제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고, 넓어보였던 운동장은 큰 건물이 들어서있어 협소해 보였다. 추억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그때의 상실감은 지금도 아프게 재생된다. 물건도 제자리란 것이 있다. 버스 노선이 주말공사 덕분에 바뀌면 많이 불편하고 생소하다. 매일 쓰던 물건도 있던 자리에 없으면 찾아다니느라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렇게 사소한 물건이 제자리에 없든가 가던 길이 조금 틀어져도 힘든데, 하물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어쩌겠는가?

나는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났다. 그래서 내 주위엔 나이 든 분들이 많이 계신다. 요즈음 들어 부쩍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아졌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분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그 누구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항상 안타깝고 슬프고 아쉽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하고 믿어보지만 감정이 뒤죽박죽 되어버려 울컥할 적이 더 많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오랫동안 성가대에서 같이 봉사한 자매님이 지루하고 힘든 투병생활을 접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그 동안 병원을 자주 찾아가 주지 못한 미안함도 많았는데 마침 장례미사가 있다고 했다. 그 마지막 가는 길을 같이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얀 장갑을 끼고 다른 세 명의 남성단원들과 함께 관을 들고 성당 안으로 향했다. 손을 관 모서리에 살짝 대고는 속으로 나지막히 말했다. "누님, 저 왔어요. 자주 못 찾아뵈서 죄송." 그렇게 하고 나서 계속 걸어가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를 보낸다는 것, 여전히 어렵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누님을 뵌 것이 언제던가? 단원의 집에 초대받아 간 지난 여름이었다. 치료도 잘 받고 몸도 많이 회복되어 오랜만에 성가대 나들이에 참석한 것이었는데 그날 나눈 식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못해준 것만 기억난다. 운동을 항상 열심히 하셔서 탄탄하고 맵시 있는 몸매를 유지하시던 그 분. 남의 험담은 일체 안하셨다. 값싼 유대감이나 느끼려고 몰려다니며 남의 험담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자리에는 절대로 참석조차 않으셨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셨고, 활기차고 유머감각이 뛰어나 늘 나를 웃게 해준 분이셨다. 진즉에 그분에게서 그런 현명함이나 배워둘 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자리를 떠나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자매님이 남긴 자리는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지금 사순절이다. 마리아는 남자 없이 임신을 했다. 무조건 믿으라는 하늘의 혹독한 요구에 순종했다. 파혼을 결심한 요셉에게도 받아들이라고 했다. 요셉의 믿음은 진정성이 의심될 만큼 파격적이다.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어릴 적부터 예수는 총명하고 야무진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 잘난 아들이 죄 없이 끌려가서 사형수들과 같이 매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마리아는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이해하기 힘든 하늘의 뜻에 의문을 품지는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가는 날 그 누가 날 그리워하며 그 빈자리를 안타까워할까? 아님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처럼 하루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하여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존재조차 잊혀지는 것 아닐까? 그런 두려움을 지닌 자신을 보며 화들짝 놀란다.

미사가 끝났다. 관의 방향을 틀어 앞장을 선 후 관 모서리에 다시 손을 얹고 무심한 표정으로 성가를 부른다. "주여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다시 속으로 읊조린다. "누님 잘 가셔요. 아픔 다 잊고, 아픔 없는 곳으로 편히 가셔요." 부활을 상징하는 촛불을 등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그녀를 보낸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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