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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김구 선생과의 인연

내 나이 어느덧 90이다. 열 여섯 살 중학생 때 해방을 맞았다. 이후 지금까지 조국의 번영과 남북 통일을 기원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통일은 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일제 강점기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하였고, 해방 후 광복 조국의 하나됨을 위해 애쓰시다 흉탄에 스러진 만고의 애국자 김구 선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여기엔 김구 선생과 선친과의 인연을 빼 놓을 수 없다. 아버님(최재화:1892~1962)은 3·1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가 탈출해 중국으로 망명, 상해 임시정부에 들어가 의열단에서 투쟁하셨다.

당시 어머님은 7년만에 중국을 찾아가 아버님을 만났는데 그때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햇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낳자마자 귀국하셨지만 독립운동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일제 치하 일경에 수많은 괴롭힘을 당하셨다. 그러다 해방을 맞아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나는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다 6·25가 터지자 공군에 입대했다. 여의도 비행장 제 10전투비행단에 배속되어 무스탕 전투기 출격 지원을 맡았다. 그 때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중령을 만난 것도 아주 특별한 인인이었다.



참전 용사로 5년 복무 후 다시 복학했고 졸업 후에는 고령농고, 대구공고 영어 교사로 일했다. 이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97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니 미국 이민 생활도 벌써 40년이 되었다.

나는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한시도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동안 대통령도 여럿 바뀌었지만 진보, 보수를 떠나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국가와 국민을 이끄는 진실된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충심으로 기도하였다. 나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모든 애국 선열의 염원대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조속히 통일되고, 세계 만방에 우뚝 솟아 번영의 나라, 평화의 나라로 빛을 발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최성근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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