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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높아진 호르무즈 해협…전쟁으로 이어지나

트럼프의 핵합의 파기 셈법은
중동 이익 극대화 노린 압박수단

전쟁 발발 가능성 높지 않지만
작은 불씨가 큰 화재 부를 수도

호르무즈 해역의 파고가 다시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미군 무인기 격추에 보복 공격을 준비했으나 공격 10분 전에 중단했다며 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던 급박했던 순간을 직접 공개했다. 호사가들은 중동에서 10년마다 빠짐없이 변고가 일어났다는 징크스와 함께 아랍의 봄 이후 얼추 10년이 지났음을 떠올린다. 호르무즈의 긴장은 진짜 전쟁으로 이어질까. 도대체 미국과 이란은 왜 이렇게 걸핏하면 부딪치는 것일까.

이란 현대사에 자리 잡은 구원의 감정을 빼놓고 오늘의 분쟁을 이야기할 수 없다. 중동 최초의 입헌 민주주의를 좌초시킨 이란 총리 실각사건이 발단이다. 1951년 집권한 모사데그 총리는 이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석유 산업 국유화에 나섰다. 이란 석유의 단물을 즐기던 영국과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1953년 CIA의 비밀작전으로 모사데그가 축출되고 절대왕정이 들어섰다. 민주주의를 설파하던 미국이 자국 국익에 어긋나자 이란의 첫 민주 정부를 뒤엎은 기억은 이란 국민에게 오래 남았다.

미국 역시 이란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기억을 품고 있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미 대사관 직원 52명이 444일 동안 억류되었다.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1983년 이란이 후원하는 헤즈볼라가 베이루트 미 대사관 및 해병대를 공격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반면 1988년 걸프해역 미군의 오인사격으로 이란에어 민항기가 격추되어 290명이 목숨을 잃자 이란 국민들은 극도의 반미감정으로 들끓었다. 전쟁한번 하지 않았음에도 미국과 이란은 서로 증오했다.

부시 행정부의 정권교체 구상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란을 바꾸기로 했다. 이란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였다. 양국에 친미 민주 정부를 세우면 이란 좌우에서 자연스레 민주주의가 테헤란으로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기대와 거꾸로 전개되었다. 이라크 안정화작전에 실패하고 아프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란은 외려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연결시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방향을 틀었다. 핵문제만 해결되면 이란과 함께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비쳤다. 이란의 핵개발 속도가 빨라지자 오바마는 2011년부터 최고 수위의 제재로 이란을 압박했다. 금융과 석유 거래가 차단되며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이란 유권자들은 2013년 대선에서 중도파 하산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했던 로하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오바마는 이란과의 물밑협상을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15년 7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P5+1)은 이란과 역사적 핵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을 타결하게 된다.

오바마의 목표는 이란 체제교체가 아니라 핵무기 없는 이란을 포용하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외교적 압박과 설득을 통해 핵프로그램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이란을 국제사회로 끌어냈다. 투자가 활성화되고 서방의 인력과 물자가 들어가면 결국 이란의 강고한 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념보다 자본의 힘을 믿었다. 중동의 세력 균형도 덤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예측하지 못했던 요소가 하나 있었다.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핵합의 찢고 항복 요구한 트럼프

트럼프는 지난해 합의를 파기하며 이란 제재를 복원시켰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이란이 못미덥긴 하지만 합의를 지키고 있고 위반 징후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란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잘 지켜온 합의였는데 미국이 먼저 파기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후 미국과 이란은 갈등의 수위를 높여왔다.

트럼프는 무슨 생각으로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했을까. 부시 정부처럼 이란을 악의 화신으로 믿는 걸까. 트럼프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이익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란 핵합의 역시 트럼프에게는 이익의 문제였다.

하나는 정치적 이익 계산이다. 합의 파기를 선언하던 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란에 12개 재협상 조건을 제시하며 협상의 여운을 남겼다. 말은 재협상이지만 내용은 이란의 항복 조건에 가까웠다. 오바마는 이란의 눈치를 보았지만 자신은 이란을 굴복시키는 협상을 성사켰다는 그림을 떠올리는 듯했다. 사실 시간은 미국 편이다. 제재 복원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이란 지도부는 고민에 빠졌다. 지지계층인 빈곤층의 이탈이 가속화되면 자칫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경제난에 부딪힌 이란이 대폭 양보하고 협상에 나와도 이익이고 이란이 계속 버티다 체제 균열이 생겨도 이익이다.

동시에 동맹국에게서 실리적 이익도 챙겼다. 트럼프가 이란 압박에 나서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을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는 전통적 걸프 왕정은 반색했다. 미국은 생색을 내며 사우디 등에 무기 판매나 투자 유치 등의 경제적 과실을 챙기고 있다. 이스라엘 변수도 있다. 이란 압박은 이스라엘 편들기로 연결된다. 다시 미국 국내 정치에서 유대 자본과 크리스천 시오니스트들의 트럼프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선순환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란 때리기는 트럼프에게 여러모로 꽤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러나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전쟁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내 전쟁 피로감이 있는 데다 전쟁의 최종 목표도 모호하다. 정권 교체가 목표라면 이라크 전쟁의 몇 배나 되는 전력을 투입해도 버겁다. 이란 핵시설은 넓게 분산되어 있고 지하에 은닉되어 있어 타격하기 매우 어렵다. 그리고 트럼프는 스스로를 협상의 달인이라 믿는다. 압박과 제재의 흔들기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야 협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된다. 최종 옵션인 전쟁은 거래의 실패에 다름 아니다. 최근의 이란 압박이 흔들기를 통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읽히는 이유다.

물론 돌발 변수는 언제나 있다. 호르무즈는 예민한 지역이다. 우발적인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쟁은 가까워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바로 옆에 있을 수 있다. 본능적 이익 셈법에 기반한 트럼프의 중동 정책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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