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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한글과 에스페란토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7/2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07/21 15:08

세상에는 수많은 문자가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만든 사람이 명확히 나타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이 독특한 문자로 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 언어의 경우는 누가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언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달되어 온 것이기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상상 속에 있던 일을 현실로 만든 언어가 바로 자멘호프가 만든 에스페란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과 에스페란토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한글과 에스페란토를 이야기할 때 독창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금방 알 수 있듯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문자 체계, 언어 체계와 같지 않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독창적이지만 그동안 있었던 문자와 언어의 장단점을 고려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글의 경우는 세종이 다양한 문자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특히 당시에 쓰고 있던 한자의 문자 체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벗어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한자의 체계에 일부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문자를 배우는 백성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에스페란토도 마찬가지겠죠. 우선 기존의 문자 체계를 최대한 따르는 것이 새로 문자를 배우는 어려움을 덜어주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물론 문법이나 어휘도 단점을 빼고 최대한 이용해야 했겠지요.

그래서일 겁니다. 아무래도 한글은 한자권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간편한 문자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받침을 쓰는 방식은 알파벳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가로로만 쓰는 게 아니라 가로세로로 문자를 조합하는 방식은 복잡하게 느껴질 겁니다.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사람의 경우도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습 속도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연히 서양인의 학습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글을 자멘호프가 만들고 에스페란토를 세종이 만들었다면 어떤 결과로 나타났을까 상상해 봅니다. 물론 알파벳이 주요 문자였던 유럽에서는 음소문자인 한글의 창제 필요성이 적었을 겁니다. 아마 각 언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음성기호 정도로 한글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도 한글을 국제음성기호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자멘호프가 한글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받침도 없었을 것이고, 글자모양도 더 알파벳에 닮아있었겠지요. 그리고 만약 세종이 에스페란토와 비슷한 세계 공통어를 만들려고 하였다면 아무래도 어휘는 한자어가 많이 이용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동아시아 언어 간의 발음의 차이를 최소한으로 줄인 한자 어휘를 주요 어휘로 만들었을 겁니다. 지금도 한자어가 한중일 발음이 달라서 서로 통하지 않으니 현실성이 있는 상상입니다.

저는 요즘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열심히 익혀서 에스페란토가 꿈꾸는 세상도 만나보려고 합니다. 한글과 에스페란토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문자이고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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