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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아버님도 학원간다··· 일생 사교육에 갇힌 한국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9 22:54

대치동서 가르친 고3, 4년뒤 노량진서 재회
대입 사교육, 취업 사교육, 인생 2막 사교육
전문가들 "국가·지자체의 교육 책임 부족,
불안한 젊은이들 사교육서 각자도생 길 찾아"


최근 교육계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일컬어 '시험 공화국' '일생 사교육' '평생 수험생'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돌고 있다. [픽사베이 이미지]

김지연(여·24)씨는 올초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의 한 학원에 등록했다.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김씨는 문을 열고 들어온 국어 강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가 고3 때 대치동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던 강사였기 때문이다. 강사도 김씨를 알아보고 눈이 커지며 “네가 여기 웬일이냐”며 큰 소리로 물었다. 김씨는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기 보다는 대학을 마치고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돼 우울하고 씁쓸했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의 대입종합학원에서 한국사 1타(최고 인기) 강사로 활약하던 K씨는 3년 전부터 공무원 준비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학령인구 감소, 수시 확대, 문과 기피 등으로 수능 학원의 수강생이 줄자 공무원 학원으로 옮겼다. K강사는 “상당수 학생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 강의 들었다’고 인사해 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국사는 서울대 필수 과목이라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들었다”면서 “고3 때 상위권이었던 제자들조차 대학 졸업 후 노량진으로 몰려 오는 걸 보면 착잡하다”고 털어놨다.

한국 젊은이들이 '평생 수험생'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는 ‘일생 사교육’ ‘시험 공화국 시민’이란 자조적 표현이 나올 정도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는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며 사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후엔 결국 취준생(취업 준비생)이자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족)이 돼 노량진 학원가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바늘구멍같은 경쟁률을 뚫고 대입과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시험은 끝나지 않는다. 40대 이후엔 또다시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처럼 인생 2막을 준비하려 학원가를 전전해야 한다.
수험생들은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사교육 의존의 원인으로 꼽는다. 김지연씨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졸업했지만, 의대나 사범대 등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된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다른 (중하위권) 대학 졸업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엔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갖기 위해 재수·편입학원, 로스쿨이나 약학대학 대비 학원 같은 사교육 시장을 떠나기 힘들고, 그러다 취업에도 실패하면 공무원·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위해 또다시 사교육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설령 취업에 성공해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진 않는다. 직장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 모(여·33)씨는 “대기업에 들어가도 소모적인 업무에 시달릴 뿐 성취감·안정감 모두 느끼기 어렵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놓는 것이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 강의실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시험준비학원에서 공시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교육업계는 이 같은 수요를 쫓아 수능 대비에서 성인 시험 시장까지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대입전문학원인 스카이에듀를 운영하는 교육기업 ST유니타스는 공무원단기학교(공단기)를 운영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흡수했다. 최근에는 공인중개사단기학교(공인단기)를 열고 공인중개사 시험 대비도 시작했다. 메가스터디도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인 LEET를 준비하는 메가로스쿨, 약학대학 입학시험인 PEET 대비를 위한 메가엠디를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또 김영편입학원을 인수해 편입 시험도 대비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들이 사교육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이유는 결국 불안정한 현실을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국가·지자체 등 사회가 담당해야 할 재교육 혹은 계속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 결국 개인이 사교육 시장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나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전 국민을 평생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을 하는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도전하려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안전망이 구축돼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기존의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자리다툼이 과도하게 이어진 결과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사교육 과열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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