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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소련 붕괴로 막 내린 러시아혁명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2월, 식량을 비롯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 민중이 봉기해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렸다. 2월혁명이다. 이후 들어선 임시정부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온건파인 멘셰비키가 주도하고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수반을 맡았다.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파인 볼셰비키는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그해 4월 망명 중이던 스위스에서 독일 제국이 제공한 봉인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레닌은 귀국 6개월 만에 10월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 모든 권력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외치며 급진계 급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에 넘어갔다.

볼셰비키는 1918년 3월 3일 독일 등 동맹국에 상당한 서부 영토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조약을 맺고 1차대전에서 이탈했다. 이어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과 치열한 내전을 벌여 볼셰비키의 적군 121만 명, 백군 15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상호 살상극과 보복행위, 그리고 이산가족 발생은 시대의 잔혹극이 됐다. 300여년간 이어져 온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황후와 네 딸, 그리고 모계유전으로 혈우병을 앓고 있었던 어린 황태자와 함께 우랄 지방 예카테린부르크의 2층 저택에 감금됐다. 1918년 7월17일 새벽 황제 가족과 주치의, 하인 등 11명은 지하실로 끌려갔다. 총소리가 시작됐고 황제와 황후가 쓰러졌다. 황태자 알렉세이도 총상을 입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보석이 박힌 드레스 탓에 첫 총격에서 치명상을 입지 않았던 공주들은 대검에 찔리거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았다. 지하실에는 탄환 연기가 가득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없어진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믿고 실천에 옮겼다, ‘신성한 노동을 시장에 팔게 만든 물신화(物神化)의 주범’인 화폐를 없애고 생산수단의 국유화에 나섰으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간성의 기적이 일어나기는커녕 1921년의 공업 생산량은 혁명 이전 수준의 3분의 1로 줄었으며 1920년대 초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이라는 소련 사회주의보다 더 거짓된 선동으로 2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잘못된 체제와 악한 권력 때문에 고귀한 인간의 생명과 소중한 자유가 사라졌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체제가 바뀌면 인간의 이기심이 용해된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해악을 끼친 거짓말이 되었다.

공산주의 이상향을 향해 이전의 어떤 국가들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온 소련은 한 세기를 넘기지못하고 불과 74년 만인 1991년 8월 쿠데타와 그해 12월 민스크 선언, 얄마타 협정 등의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붕괴되었다. 그것은 세계사의 지축을 뒤흔든 볼셰비키 혁명의 대반전이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 개방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에 반기를 든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체포하려던 순간이었다. 역사를 후퇴시키려던 개혁 반대세력에 맞선 옐친의 ‘용기있는 리더십’이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 해 8월 18일 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국방, 내무부의 공산당 보수 강경파들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하고 흑해 크림 반도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사임을 요구했으나 고르바초프가 이를 거부하자 그를 이 별장의 지하실에 감금했다.



쿠데타 세력은 탱크 부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켰다. 쿠데타 군이 모스크바 시내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의 옐친 지지자들이 의사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쿠데타에 참가한 군부대는 전차를 철수시켰다. 1989년에 일어난 동유럽 혁명은 소련이 속국 취급하던 중부유럽의 공산당 정부가 잇따라 붕괴되었다. 1991년 1월, 중부유럽혁명으로 유명무실해진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경제상호원조회의가 폐지되고, 3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그 해 5월 라트비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이것에 의해 발트 3국은 소연방에서 탈퇴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그루지야가 독립을 선언했다. 1991년 12월 8일, 벨라베자 조약에 의해 독립국가연합이 출범하면서 소련연방은 74년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1992년에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그 이듬해 설날 이후 독립국가연합에 의한 새로운 국가들이 성립되었다. 독립국가 중 12개국이 독립국가연합을 구성하고 12월 24일 소련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소련의 붕괴는 허망했다. 오늘날 러시아 인들은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을 외면하고 있다.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일본의 러시아 문학자 가네야마 이쿠오(龜山邦夫)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허망한 최후를 고려하면 10월혁명으로 세계가 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렀는지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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