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칼럼]시절 인연
살며 생각하며
사람의 일 중에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때가 언제였더라. 과거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초고속이다. 그와 함께 자주 갔던 찻집의 정경과 추억 속 감정들이 한순간에 고개를 들고 달려왔다. 몇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누지 못하는 사이가 된 섭섭했던 감정이 앙금처럼 있었는데, 그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니.
친구는 우리의 만남을 ‘시절 인연’이라고 했다. 사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절, 나를 만났던 것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마음 시린 이야기들이 유난하게 많았던 그 시절, 우리는 서로의 말을 그냥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온기를 얻었었다. 돌이켜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고 그녀가 삶의 어두운 공허와 절망의 시간에 빠져 있었을 때, 친구를 떠나 보낸 슬픔에 잠겼던 내가 같은 시공간에서 만났던 거였다. 맞다. 우리의 시절 인연이었다.
시. 절. 인. 연. 음절 하나하나 나지막이 읊조리기만 해도 애잔함이 밀려오는 듯했다. 생각만으로도 옛 추억이 밀려올 것 같았다. 불가에서는 시절 인연이 닿아야만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지. 언젠가 법정 스님이 쓴 수필집에서 읽는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인연’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다고 했었다. 우연처럼 만나는 관계도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연에는 오가는 시기가 있어서 만나지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세상의 모든 인연이 흐르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떠나간 세월과 손 흔들며 사라져간 인연 중에 시절 인연이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면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 딱 거기까지였을 테니, 잃은 재물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끊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시절 인연’은 참 묘한 이치 같기도 하다.
내가 걸어온 인생길보다 훨씬 짧아져 버린 미래,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사람과 시절 인연을 맺게 될까. 남은 생의 여로에서 만나고 헤어지다 보면 또다시 아픔과 우울을 겪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누군가에게 애정과 배려, 즐거움처럼 좋은 것만 줄 수 있는 시절 인연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며 내 생각을 했을까. 바쁜 오늘을 살아내느라 친구를 잊어버렸던 나에게서 서운함을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후회가 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 조금 더 잘 해줄걸.” 하며 나처럼 후회했었을까. 한때 스쳤던 시절 인연인 줄 알았었는데, 서로의 삶을 바라보며 함께 노년의 길을 갈 수 있게 해 준 친구가 참 고맙다.
빈 나뭇가지에 걸린 실눈 같은 초승달이 웃는 겨울밤, 때 늦은 크리스마스 카드로 다시 찾은 ‘시절 인연’ 덕분에 꽁꽁 얼었던 내 삶이 스르르 녹는다. 이 순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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