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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착한 사람 되기를 포기하다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03 15:53

101호 할머니 방 앞에 서니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문을 열고 보니 침대 위에 오물이 번져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빈 깡통들이 그득했다. 거동도 불편한 분이 밤새 물을 들이켰으니 사고를 칠만도 하지. 그보다도 외출도 못하는 분이 어디서 음료수를 구했는지 궁금했다.

맞다. 난이 할머니 아들이 어제 방문했던 것을 깜빡 잊었다. 사달라고 하면 그게 무엇이든, 약부터 시작해서 간식거리까지 즉시 대령하는 착한 아들 덕분에 난이 할머니의 방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쳤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난이 할머니의 과잉 친절 때문이었다. 설사로 배 아픈 할머니에게 변비완화제를 주어 더 큰일을 치루게 했고, 당뇨병을 앓는 할머니에게는 사탕을 봉지째 안기기도 했다. 막을라치면 좋은 일을 왜 못하게 하냐며 막무가내, 어쩌랴. 일의 매듭을 지으려면 결국 내가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사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생활 공동체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중에는 자기가 만든 미담에 도취하여 사는 사람도 있고, 제 속은 상실감과 외로움에 뭉그러지면서도 억지로 남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도움을 주고 받는 사람도 있다.

20년 전에 절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며느리 친구들이 놀러 오면 언제나 다과와 차를 내어놓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앞에서는 나를 예의 바르고 활동적인 여자라고, 내 남편에게는 좋은 아내를 만났다면서 극구 칭찬을 했다. 과분한 칭찬에 내가 거북해하면, 친구는 얼른 ‘맞는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나를 빗대며 은근히 친구를 얕보는 것 같아서 “남의 떡은 늘 커 보이는 법이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행여 내 당돌함이 친구에게 누가 될까 봐 꾹 참았다. 하지만 수 백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탓에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친구와 회포를 풀고 싶은 내게 그 친절함은 그저 귀찮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느 해 여름, 위암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도착하니 늦은 오후, 식구들은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저녁 먹자는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킨 친구를 부축해서 상 머리에 앉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말기 암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아예 없는 밥상, 갈비구이만 그득했다. 내가 죽을 끓이겠다며 일어서자, 의사가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며 시어머니가 만류했다. 문득 나의 암 투병 시절, 내가 맛있게 먹었던 따끈한 닭죽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했다. 넉 달 후에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내 깜냥으로 어찌 위암의 원인이나 결과에 토를 달 수 있을까만, 친구가 속내를 훌훌 털어내며 살았더라면 혹시 안 아팠을까? 말수 적은 친구가 사는 동안 내쉬었던 한숨 소리의 의미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때늦은 자책으로 눈물을 훔치며 지내던 어느 날, 친구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내 친구 중에 혹시 좋은 신붓감이 없는지, 내가 중매를 서면 두말하지 않고 아들을 재혼시키겠다고 했다. “ 없습니다.” 나는 착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착한 사람이 되고픈 마음도 없었다.

사실 나는 착함의 부작용이 인간지사의 원흉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 내숭을 떨지 않고, “예, 아니요”의 뜻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나 생각을 서슴없이 내보이는 것.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성격이 거칠고 행동이 성급한 경솔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대도 무엇이 대수랴. 착하지도 않은 내가 착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는 그냥 나답게 사는 게 훨씬 더 행복한 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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