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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횡재


우리 집 거실에 조그만 미인화가 한 점 걸려있다. 우리의 전통춤 검무를 추는 무희의 초상이다. 이 그림을 내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20년 가까이 된다. 내가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 아칸소주에 살 때 이베이(eBay) 인터넷 경매에서 산 것이다. 그동안 이사할 때마다 신주 모시듯 모시고 다녔다. 한국화의 1세대 화가 남정 박노수(朴魯壽, 1927-2013)의 작품이다. 박노수 화백은 1955년에 국전에서 한국화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작가다. 그림 제관(題款)에 병신년(1956)이라고 쓰여 있으니 그가 국전 최고상을 받은 이듬해 그린 것이고 1970년 이후 그의 화풍이 바뀌기 전 초기작이다. 그가 그의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기 전, 그의 원초적 기법이 돋보이는 소품이다.
이베이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에는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 있고 운 좋으면 명품 예술품도 헐값에 살 수 있던 때였다. 이베이가 그때는 그만큼 어수룩했고 한국 서예품 보기는 가뭄에 콩 나기였다. 요새는 위조품이 넘쳐나서 나도 이베이 사이트에 들어가 본 지가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이 그림은 일리노이주에서 시작가 7불에 경매에 나왔다. 내정가(최저 낙찰 가격)도 없었다. 경매 품목에 오른 사진을 보니 그림 자체는 온전한 것 같았는데 액자는 흠 자국도 있고 페인트도 벗겨져 있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림이 진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액자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 말고 세 사람이 경합했지만, 경매가 끝나니 그림은 내 것이 되었다. 다른 경쟁자들은 별 볼 일 없는 그림으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송료를 포함해서 20불 남짓 들었다. 거의 공짜로 얻었다고 해도 된다. 땅을 파다가 금을 얻는다는 굴지득금(掘地得金)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의 내 죽마고우 K 화백이 나보고 횡재했다고 했다.
그림을 받아 보니 액자 프레임이 몹시 망가져 있었다. 액자를 새로 바꾸고 벽에 걸어놓고 보면서 나는 세상 살면서 이런 행운도 있는가 싶었다. 내가 받았을 때의 액자의 상태로 보아 이 그림이 저간에 홀대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그림이 애당초 어떤 사연에 의해서 박노수 화백의 손을 떠났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 내의 몇 개의 주와 시를 거쳐 내 손에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여러 해 전에 본 ‘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이라는 영화가 연상 된다. 17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장인 니콜로 부조티(Nicolo Bussotti)가 만든 불후의 명품 붉은 바이올린이 손에 손을 거쳐 세계 곳곳을 떠도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파란곡절을 담은 이야기다.
내 미인도는 그렇게까지 심한 우여곡절을 겪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첫 번째 소유자는 그림의 가치와 박 화백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의 원래 액자에 뉴올리언스시의 어느 유명 프레임 샵의 라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어떤 연유로 미인도는 무관심과 푸대접을 받으며 이곳저곳을 떠돌았는가? 경매에 내놓은 사람이 내정가도 없이 7불을 시작가로 걸었으니 결국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 아닌가? ‘레드 바이올린’에서 명장 부조티가 그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만든 악기가 마치 장난감처럼 아무에게나 맡겨져 300여 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던 일이 오버랩되어 왔다. 그 바이올린은 중국 문화혁명 때 서양 문물로 분류돼 불 속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위기도 겪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어낸 영화 속 이야기다. 내 미인도는 함구무언이니 그의 불행한 여정을 가늠할 길이 없다. 그 지난 행적이야 알 길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미인도가 그간 겪어온 험하고 정처 없는 여정은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박 화백이 별세 후 그가 살던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택이 종로구 구립 ‘박노수 미술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참고로 달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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