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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배날띠끼’

아주 어려서 이민 왔거나 미국에서 나서 자라지 않은 이민 1세대에게는 해도 해도 어려운 것이 영어다. 나는 반세기를 미국에서 살면서 그 대부분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우리말을 별로 쓰는 일이 없이 살아왔는데도 잘못 발음하는 영어 단어가 있고 미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어휘가 낯설 때도 간혹 있다. 액센트(억양)가 심한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인지 되물어야 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남쪽 사람들의 느린 사투리(Southern drawl)나, 인도나 아프리카 출신들의 영어를 이해하려면 특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은퇴 후 한인이 많은 애틀랜타에 와서 살며 그런 불편은 거의 사라졌다. 하긴 이곳에서는 영어 한마디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말도 한다. 세 살 때 미국에 와서 한국 사람 거의 없는 학교 촌에서 자란 우리 딸은 콜로라도에서 애틀랜타에 다니러 올 때마다 장난삼아 우리보고 ‘Little Korea(작은 한국)’에 산다고 한다

우리 딸이 어려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인데 어느 날 느닷없이 “Daddy, you have an accent! (아빠, 액센트가 있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미국 원어민의 발음과 다르면 액센트가 있다고 한다. 같은 영어라도 영국 사람들의 영어는 British accent(영국 액센트)라고 하는 것처럼. 생전 처음으로 내 영어 발음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어린 딸에게서 받고 정신이 번쩍 났지만 그렇다고 액센트를 교정하려고 영어공부를 다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로 30이 다되어 미국에 와서 원어민처럼 발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영어를 잘못 발음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장 보러 가는 것을 쇼핑(shopp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미국에서는 샤핑이고 영국 발음도 약간 차이는 있으나 쇼핑보다는 샤핑에 가깝다. 비아그라(Viagra)는 바이아그라, 비타민(vitamin)은 바이터민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문을 연 가구점 ‘이케아(IKEA)’도 영어권에서는 ‘아이키아’로 읽는다. 하긴 미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이 Samsung을 ‘삼성’이라고 하는 것은 못 들어 봤다. 으레 ‘쌤성’ 아니면 ‘쌈숭’이다. 현대(Hyundai)자동차도 Hyundai는 썬데이(Sunday)와 운이 맞게 ‘헌데이’하면 된다고 미식축구 슈퍼볼 광고에서 밝힌 일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헌데이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게 운이 비슷한 Sunday를 갖다 댄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식 영어 발음 또는 표현을 콩글리시(Konglish)라고 하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이런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용하지만, 영어권 원어민들에게는 생소한 표현에 파이팅, 핸드폰, 원샷, 스킨쉽, 아이쇼핑, 백미러 등이 있다. 이런 콩글리시는 잘못된, 엉터리 영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무조건 틀렸다고 배척할 일도 아니다. 토마토, 사이다, 에어컨, 다이어트, 치즈, 게임 등 영어가 우리말이 돼버린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소통할 때야 어떠랴. 그러나 발음도 의미도 한국화되어버린 한국식 영어는 원어민과의 대화에서는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아주 오래 된 이야기지만, 내가 중학교 때 축구시합을 보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골라인 밖에 서서 구경하는 내 옆에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옷차림을 한 젊은 청년 몇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경기는 막상막하였다. 시합이 거의 끝날 때쯤에 그 청년들이 응원하던 팀이 상대 팀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는 행운을 잡았다. 그런데 아깝게도 실축으로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아 왜 그 ‘배날띠끼’를 못 넣어!” 그중 하나가 내뱉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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