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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의 사랑 노래, ‘바람은’

반가우면서도 선선한 여름비에 문득 떠오른 사랑 노래 한 곡. 여창(女唱) 가곡(歌曲) 중 ‘우락(羽樂), 바람은’을 아주 오랜만에 들었다. 흔히, 가곡 하면 ‘그리운 금강산’ 등 서양음악식의 가곡을 떠올릴 분들이 많겠지만, 오늘은 전통음악 중 가곡을 소개한다.

가곡은 조선의 문인들이 풍류로 즐겼던 성악곡, 정가(正歌)의 한 종류이다.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고 소규모의 관현악 반주와 함께 부른다. 시조는 짧은 3장 형식의 글이지만, 가곡으로 불릴 때는 5장 형식의 제법 길고 느린 노래가 된다. 그 구성은 시조의 초장을 1장과 2장에 나누어 부르고, 중장을 3장에, 종장 처음의 세 글자는 4장에, 그리고 나머지는 5장에 부른다. 짧은 시구를 길고 느리게 부르기 위해 모음을 쪼개고 늘여 부르는 방법을 쓴다. 예를 들면, ‘우락’의 첫 소절 가사인 ‘바람은’은 ‘바아으아 라아~으아암 으흐으흔’으로 길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늘리기만 해서는 음악이 심심해진다. 모음을 늘인 사이에는 온전한 음악적 채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성(搖聲), 추성(推聲), 전성(轉聲) 그리고 퇴성(退聲)과 같은 한국음악 특유의 시김새(꾸밈음)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제된 형식의 시조는 정교하고 세련된 선율, 긴 호흡 속에 절제된 음색과 만나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특히, 여창 가곡의 경우 ‘속소리’라고 하는 가성(假聲)과 ‘겉소리’인 진성(眞聲)을 절묘하게 오가며 구사하는 시김새가 감상 포인트의 하나다. ‘담대하면서도 맑고 청아하며 기품 있는’ 음색을 지향하는 가곡의 발성은 흔히 국악식 창법으로 익숙한 민요나 판소리와는 전연 다르다. 그저 직접 들어보시기를.

고려의 ‘정과정곡(鄭瓜亭曲)’이 조선의 ‘대엽조(大葉調)’로 이어진 것이 가곡의 원형이지만, 현재의 가곡은 조선 후기에 원곡의 변주를 통해 여러 파생곡들이 만들어지면서 완성됐다. 가곡은 27개의 노래를 연결하여 부르는 일종의 노래 모음곡으로 남창과 여창 있다. 본래는 남녀가 교대로 부르다가 마지막 곡인 ‘태평가(太平歌)’는 함께 합창으로 부르는 연주 형태이다. 그러나 요즘은 각각의 곡을 별개로 떼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7가지 노래의 선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각기 다른 제목과 가사, 음악적 특징이 있어서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 노래로 돌아가 본다.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궂은 비는 담아 붓듯이 온다/눈 정(情)에 걸은 님을 오늘 밤 서로 만나자 하고 판(判) 첩 쳐서 맹서(盟誓)를 받았더니 이러한 풍우(風雨) 중에 제 어이오리/진실로/오기 곧 올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 곡은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 노래다. 아마도 결국은 오지 못했을 연인을 그리는 애틋한 여인의 노래인데, 음악은 곱고 담담하다. 가객(歌客) 박효관과 안민영이 가곡을 집대성하여 저술한 『가곡원류(歌曲源流, 1876)』에 따르면, ‘우락’은 “요풍탕일(堯風湯日) 화란춘성(花爛春城)”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요 임금의 바람과 탕 임금의 햇빛 아래 꽃이 만발한 봄동산”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가운데 우아와 기품이 흐르게 불러야 제맛인 것이다.

이런 담대한 음악적 품성에 절절한 사랑의 노랫말이라니,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의 조우가 이 노래 한 곡 안에 담겼다고 해야 할까? 심오한 음악적 사유는 접어두더라도 이토록 애틋한 가사를 그토록 담담하게 부르는 절제미 가득한 조선 여인의 사랑 노래다. 뜨거운 계절을 잠시 밀어내는 세찬 여름비를 보며 이 노래를 음미한 이유는 때론 고독한 현실 속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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