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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유력 언론의 주필이 말한다. “국민은 개 돼지와 같아서 조금 지나면 모두 잊게 됩니다.” 몇 년 전 한국 교육부 간부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용했다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던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이다. 소위 권력을 가진 이들이 대중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한번쯤 곱씹어보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 권력의 오만은 어쩌면 대중, 유권자들이 자초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위임한 권력으로부터의 소외다.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이달 초, 일리노이 주 감사관 재선에 도전한 수전 멘도저(민주)의 시카고 시장 출마 선언 동영상이 등장했다. 멘도저의 이중 행보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나 통념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본인도 "결정된 내용이 없다. 감사관 캠페인 동영상 제작자의 권유로 한 번 만들어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화당이 “유권자에 대한 기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멘도저는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지 불과 8일만에 내년 2월 열리는 시카고 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빚어진 촌극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말을 뒤집는 정치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감사관직을 유지한 채 시장 선거에 나선 멘도저가 실제 당선될 경우 일리노이 주지사 당선자 J. B. 프리츠커가 감사관 후임을 지명하고 특별선거를 치르게 된다. 유권자들의 손을 빌리는 대신 끼리끼리 조율해 나눠먹겠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뻔한 속이 들여다 보인다.

프리츠커 주지사 당선자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오락용 마리화나의 합법화다. 이와 관련 지난 중간선거에서 시카고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가 함께 실시됐다.



“마리화나가 합법화 된다면 판매 세수를 시카고 공립학교와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에 활용해도 되는가.” 무려 88.2%가 찬성했다. 합법화를 전제로 한 이 질문에 반대하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여론 조사 기법을 동원, 의도된 답을 이끌어낸 것이다. “시카고 공립학교, 정신건강 서비스 기금 마련을 위한 마리화나 합법화 및 판매세 징수”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시카고, 일리노이 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가 높은 세금이다. 시카고 북서 서버브 40만달러대 주택에 부과되는 재산세는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80만 달러대 주택 재산세 수준이다. "높은 세금 때문에 힘들다,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지역 정치를 바꿔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35년 전 주 하원의장에 오른 뒤 지금까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대표적 토호(土豪) 마이크 매디건은 이번 선거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다. “일리노이 모든 부패의 핵심은 매디건”이라고 집중 공격하던 공화당은 그의 지역구에 후보조차 내지 않았다.

시민권자든 영주권자든 한시적 체류자든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곳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직시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면 우린 영원한 이방인, 아웃사이더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어서 혹은 공화당이어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이름을 많이 들어봐서, 심지어 한국계라고 하니 무조건 지지하는 데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사익을 추구하는 특정 집단의 수사에 현혹돼 납세자•시민으로서의 권리, 소중한 개개인의 목소리를 넘겨주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플라톤이 설파한 대로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세상을 제대로 보고 올바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신문을 꾸준히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최근 한국의 한 시사뉴스쇼 진행자가 한 말대로, 제대로 만든 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시인 황지우는 ‘마음의 지도 속 별자리’에서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고 썼다.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을 보라”고 했다.

시카고 한인 이민사도 125년을 넘었다. 이제 '우물 안 개구리', '착하고 친절한 조력자'에서 벗어나 당당한 주인,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새 날을 열어가야겠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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