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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원하고,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을 보셨는지요?

30m의 높이까지 자라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답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씨를 뿌리면 얼마 후 싹이 올라오고, 잎사귀를 내고 자라는데 반해, 대나무는 씨를 뿌린지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씨 뿌린 자의 고뇌는 시작됩니다. 계속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할 지 아니면 여기서 포기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드디어 삼년 째 되는 해 작은 싹이 올라옵니다. 기쁨의 환호성은 잠시, 그 싹은 조금의 성장도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며 또 한 해를 보냅니다. 인내와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나무는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루에도 30cm에서 1m까지 자라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성장을 다해 장대같이 키 큰 나무로 자라는 시간은 단 6주입니다.



지난 1월 거친 바람과 함께 폭설이 쏟아진 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눈이 내렸습니다. 거리의 나무가지마다 수북히 눈이 쌓여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굵은 가지들이 꺾어져 도로 위에 널부러져 있었고, 작은 묘목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밭에 엎어져 있었습니다.

30년 전 이사오면서 이웃과의 경계에 향나무 세그루를 심었는데,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고, 키도 부쩍 커 이웃과의 편안한 울타리로 사계절을 푸르게 지켜주었습니다.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녹음이 짙을 때면 뒷뜰에 한 낮의 따가운 햇살을 가리는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온몸에 눈송이를 가득 안고 뒷뜰에 누워버린 것이었습니다. 토네이도에 지붕이 날라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눈앞에 벌어진 황당한 사건 앞에서 다리가 휘청거리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엄청난 뿌리가 뽑혔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기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키에 비해 뿌리는 깊지 않았습니다. 그 주변이 낮아 비가 오거나 눈이 녹을 때면 늘 물이 고여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뿌리는 깊게 뻗을 필요가 없었고 촉촉한 땅의 내성에 길들여져 잔 뿌리만 무성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거대하게 자란 자기 몸 하나 지탱할 힘이 없었던 것 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상반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때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 할 수도 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을 마음에 품지 않으면 급하게 결정하게 되고 잘 되어져 가는 과정을 원치 않게 망가트릴 수도 있습니다. 뿌리 내리는 인내와 노력 없이 나무는 직립 할 수 없고, 우리 인생 또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시간 튼튼히 뿌리내린 대나무가 결국 단시간에 성장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가꾸어 나가다 보면, 한 겨울을 인내하며 봄을 맞은 마음의 뜰에도 꽃들이 피어나고 벌 나비가 찿아드는 향기로운 정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웬만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뿌리 깊은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정직하게 묻고, 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봄이 저만치 오고 있습니다.(시카고 문인회장)

마중물 / 신호철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선다고
누군가 지나가다 한 말
묵묵히 견디는
나무가 될 때
뿌리는 깊이 내린다고
바람이 내게 속삭인 말
마른잎 벗으며 아플 때
뿌리는 더 단단해 다고
내가 나에게 다짐한 말

고양이 걸음처럼
어둠이 오고
자리를 찾지 못해
설 곳이 말라갈 때
함께 타오르는
별 빛이 되오리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오리
든든히 뿌리내리는
나무가 되오리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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