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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봄은 온다

"밤 늦게 지인들과 카드 놀이를 하고 나왔는데 모든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자동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는데 손이 그대로 달라붙었다." "당시 일부 트럭 기사들은 점프 케이블을 갖고 다니며 자동차 시동 걸기를 도와주고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1985년 시카고 강추위를 겪은 이들로부터 언젠가 들었던 경험담이다.

시카고에 '역대 최악의 혹한'이 예고돼 모두를 긴장하게 하고 있다. 지난 주 최저기온이 화씨 -4ºF(-20 ºC) 안팎까지 뚝 떨어지더니 이번 주는 기온이 더 내려갈 전망이다.

29일(화) 최저기온은 -13ºF(-25 ºC), 30일(수)은 이보다 더 낮은 -22ºF(-30 ºC)로 예보됐다. 특히 30일은 낮 최고기온마저 -14ºF(-25.6 ºC)에 머무는 등 말 그대로 살인적인 추위가 될 기세다. 겨울 시작 이래 한동안 온화하던 시카고 날씨가 최근 들어 부쩍 추워졌고, 눈까지 계속 내려 시카고 겨울다운 겨울을 연출하고 있다.

시카고 역대 최저기온은 1985년 1월 20일 세워진 -27ºF(-32.8 ºC)였다. 1983년 12월 24일은 최고 기온마저 -11ºF(-23.9 ºC)에 그쳤다. 만일 예보대로라면 30일 최저기온은 역대 최저치에 미치지 못 하지만 가장 낮은 최고기온 기록은 새로 쓸 가능성이 높다.



내가 직접 겪은 최악의 추위는 시카고가 가장 추웠던 1985년 1월 무렵,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할 때였다. 강원도 어느 산중에 있던 부대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려 오후 내내 눈을 치우고 밤 늦게 보초 근무에 나섰다.

막사에서 초소까지 거의 기다시피했다. -20~30ºC도의 강추위로 부대 내 모든 땅이 얼어 붙어, 빙판이 됐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추위는 그래도 견딜 수 있었지만 더 힘든 것은 함께 보초를 서던 고참의 괴롭힘이었다. 이유도 없이 억지 트집을 잡아 보초 서는 시간 내내 기합과 폭행을 가했다. 소총 개머리판으로 가슴팍과 어깨를 몇 차례 맞고 얼음으로 변한 바닥을 구르고 또 굴러야 했다.

보초 교대를 하고 막사로 돌아오면서 엉거주춤 걸어가던 고참이 어느 순간 휘청거리다 미끄러져 나동그라지는 순간, 달빛에 반짝이던 빙판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군 시절, 혹한과 그보다 더한 괴롭힘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면 군복을 벗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시간이 2년이든, 3년이든 확정되지 않았다면 참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이번 주중 예보된 시카고의 혹한은 두렵다. 자동차 시동은 무사히 걸릴 것인가, 도로 사정은 괜찮을까, 전기와 개스는 제대로 공급될까, 신문 제작과 배달에는 차질이 없을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시카고 추위에 대한 우려가 꼬리를 물지만 그래도 힘을 얻는 것은 주말부터 기온이 제법 올라간다는 기대 때문이다. 2월의 시작과 함께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 주말이면 최고 30ºF대를 회복할 것이라고 한다.

봄은 온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더 가까이에 있듯 이 혹독한 추위를 지나면 봄이 올 것이다. 최근 해가 많이 길어진 것만으로도 봄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어쩌면 하얀 눈밭 저 아래에선 얼어붙은 대지를 힘차게 뚫고 올라올 수선화가 움 틔울 준비를 이미 마쳤는지도 모른다. 혹한을 이겨내고 맞는 봄은 더 찬란할 것이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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