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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조국과 사랑

그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가슴이 쿵하고 울리는 소리를 낸다. 흔들리는 생의 발길이 ‘잠시 멈춤’이라는 표시판 앞에서 머뭇거린다. 마음의 텃밭에서 피리소리 들리고 아득히 먼 고향에서 풍금 소리가 울려온다. 구리빛 얼굴의 사내아이는 봄볕이 고양이 털처럼 부드러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창 틈 사이로 서울에서 이사 온 동무가 치는 풍금 소리를 몰래 듣고 있었다. 측백나무가 병정처럼 줄지어 늘어선 누렁이 꼬리 같이 빛나는 황토빛 운동장에는 머리에 흰띠 두른 아이들이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에 맞춰 둥글게 원을 그리며 뜀박질했다. 아! 지나간 세월 그 시간 속에 정말 내가 있었을까.

샤갈의 작품 앞에 서면 눈물이 난다. 딸 시집보내는 가장 행복한 시간에 흘리는 눈물처럼. 샤갈은 황홀하고 찬란한, 꿈같이 환상적인 영감으로 인간의 원초적 향수와 동경,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을 러시아의 민속적인 주제에 담아 생의 절망과 환희, 슬픔을 눈부신 색채로 펼쳐보인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세계대전과 조국의 비극적 시대상황으로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지만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다. "러시아 제국도 소련도 모두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신비에 싸인 낯선 사람일 뿐이다. 아마 유럽이 나와 나의 조국 러시아를 더 사랑해줄 것이다."라는 샤갈의 독백은 이중 국적자로 떠도는 자의 절망과 시대적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14년 베를린 발단의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로 돌아가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파리와 베를린에 두고 온 작품들을 분실하는 아픔을 겪는다. 1941년 작 ‘옛 비테프스크’(Old Vitebsk)에 검은색 보따리를 매고 회색빛 도시 위를 날아가는 남자의 모습은 방랑하는 유대인의 고통과 절망이 잘 표현돼 있다. 반면 1915-20년 사이에 그린 ‘비테프스크 위에서’(Over Vtebsk)의 남자는 같은 보따리를 들고 하늘을 나르지만 땅에는 흰눈이 쌓여있고 색채가 우울하지만 부드럽고 담백하며 안정적이다. 고통과 절망은 절실하지만 극복하면 담백해지고 아름답다.

샤갈은 한 여인을 사랑하고 조국을 그리워했다. 가난뱅이 출신 화가였던 샤갈은 부유한 유대인 딸 벨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벨라가 갑작스레 간염으로 죽는 아픔을 당한다. 샤갈 작품의 주제는 지상의 중력을 벗어난 영원의 사랑이다. 샤갈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동물들, 그 중에서도 연인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르는데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비밀스러움으로 다가온다.



현대 미술이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 많은 예술 사조를 탄생시켰지만 샤갈은 유파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눈부신 색채와 시적인 호소력에 담아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환상은 현혹이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잠재우는 그대 손길 닿은 눈부신 조각 이불이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비이성적인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의 추억들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고 누가 말했지만 추억은 세월의 강을 거슬러 억만개의 별들로 반짝인다. 지금 이 시간이 아프고 힘들어도 예술은 난도질 당하는 생의 슬픔 견디며 추억의 강에 배 띄우고 내일로 가라고 손사래질 한다. 무지개는 슬픔 속에서 찬란한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하늘 위에 뜬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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