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사람들] 맥코믹신학교 코디네이터 김대성 목사
“이민은 나침반을 들고 길을 찾는 것”
현재 맥코믹 신학교에서 한국어 박사과정 코디네이터 겸 겸임교수로 일한다.
딸이 4살, 아들이 1살 때 유학을 왔는데 둘 다 에반스톤 고교를 다녔다. 딸은 뉴욕에서 대학을 나와 저소득층 고교생들을 돕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한다. 아들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케이스웨스턴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부인은 기독교 교육 박사인데 한국을 오가면서 성경공부 교재를 기획, 출판한다.
이민 초기 하이드 팍 지역에서 한국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로렌스 길 비디오 가게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르는 유치원생어었죠. 하나 둘 배워가면서 점차 익숙해졌고 공부 계획이 변경되면서 결국 사명감을 갖고 이곳에 정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민 정착의 길은 네비게이터가 아닌 ‘나침반’을 들고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비유한다. 중간 중간 쉬면서 결정을 해야 하고 예측 못한 길을 만나는 것이 ‘사명감’ 없이는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휩쓸리는 삶이 아니고 싶다”는 그다. 보타닉 가든이나 아트 인스티튜트의 멤버십을 갖고 시간 날 때마다 찾는다. 미국인들과 한국인을 모두 만나는 기회가 많아서 좋은 것 같다고 한다.
그는 교수로서 가르치고 목사로서 설교하는 관계로, 늘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다며 웃는다. “빚을 진 마음이랄까요. 책을 읽어야 하는데 반 정도 밖에 못 읽었으니 말이죠. 더 열심히 그리고 더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스트레스는 항상 있는 편이예요.”
“1890년대 한국에 처음 신학교를 세운 게 맥코믹 패밀리입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 등 여러 민족에게 직접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맥코믹 신학교는 그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요.”
전공이 교회사여서 여행을 가도 오래 된 교회를 둘러보고 역사 박물관 등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위스콘신, 인디애나, 캔터키 등지를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고 일리노이 피오리아를 비롯, 락포트의 수로, 프린스톤의 흑인 노예 탈출을 위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등의 역사 이야기에 심취한다.
James Lee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