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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의 멘토, 나의 스승

시카고 남쪽 지역에서 북쪽 방향으로 이동 할 때면, 나는 늘 다운타운 서쪽을 지나는 94번 하이웨이를 타지 않고 조금 돌아가지만 41번 레익쇼어(lakeshore)를 이용하곤 한다. 바다 같은 미시간호수를 끼고 달리다 보면 마음까지 시원해져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질 때가 있다.

Field Musium을 지나치면서 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 다니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Scientific Illustration 과목을 맡은 교수님은 폴란드에서 온 일세대 이민자였고 Field Musium에서 Senior Illustrater를 겸직하고 있었다.

이 학교의 학점은 여러 등급으로 나눠지지 않고 Pass 아니면 Fail 두가지로만 평가 되어졌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미적 가치나 그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존중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과목만큼은 예외를 두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날 한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세리머니가 있었다. 그 교수님은 하얀 봉투 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리고 내게 봉투를 건네주셨다. 그 안에는 명함과 함께 졸업 후 나를 꼭 찿아오라고 써있었다. 자기도 이민자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다고 하면서 힘들더라도 용기를 잃지말라는 따뜻한 격려의 말까지 적혀 있었다. 수업중 나의 등을 여러번 두드려주시기도 했었다.



일년 후 나는 Field Musium 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일년동안 part time으로 자신을 도와 Assistant Illustrater로 일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그 후 일이년의 인턴쉽을 거치면 훨씬 나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고 미래가 밝다는 말도 해주셨다. 연락을 드리겠다고 인사하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혼자면 견뎌내겠지만 집엔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2살짜리 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 한번도 찾지 않은 Field Musium. 고마웠던 교수님의 얼굴이 차창에 스친다. 아마 내 인생을 통해 잊혀지지 않는 나의 멘토, 나의 스승이시다. 나도 그분처럼 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길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시간호수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푸르름으로 밀려오고, 호수 가득히 다가오는 조각난 시간들이 하얗게 피어나고 또 부서지고 있다. (시카고 문인회장)

그리운 이여

지나쳤는데
무심 했는데
간절한 시간
간절한 마음에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가 보인다
그리운 이여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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