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타인의 방
내 것이 아닌 것은 남의 것이다. 내 몸뚱아리 빼고는 모두 남이다. 가족도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모두 타인이다. 사실 내 몸뚱아리도 내 것인지 아리송해진다. 산다는 것은 각자 타인의 방에 잠시 들어가 거처한 것에 불과한 지 모른다.제2부 ‘타인의 증거’는 클라우스가 자유를 찾아 떠난 뒤, 할머니 집에 혼자 남게 된 루카스의 이야기다. 한 몸처럼 지내다 둘로 갈라진 쌍둥이의 이별은 헝가리 반체제 혁명과 유럽이 둘로 갈라진 시기의 슬픔과 고통을 상징한다.
제 3부 ‘50년간의 고독’(1991년 출간)에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둘은 어렵게 다시 만나지만 쌍둥이가 아닌 각자의 삶을 선택한다. 한 몸처럼 지내던 쌍둥이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기억이 공유되지만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호 모순을 통해 인간존재와 불확실성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이를 낳고 방황하는 처녀, 남편의 억울한 죽음으로 정신과 치료 받는 도서관 여직원, 한 권의 책을 쓰겠다고 꿈 꾸며 폐인이 되어가는 알코올 중독자 서점주인,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영리하고 불구인 소년, 소심한 동성연애자인 공산당 간부, 사회체제의 희생양인 늙은 불면증 환자 등 이들의 인생은 각각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기에 충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모든 인간은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 것 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302쪽)라고 적은 대목은 “가장 슬픈 책보다도 더 슬픈 게 인생이다. 책이 아무리 슬프다 해도 인생만큼 슬프지는 않다”라는 크리스토프의 독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 산다. ‘인간 존재’라는 슬픈 진실 속에 갇혀 산다. 문고리를 안으로 잠그고 타인의 출입을 막는다. 문 열면 코발트 빛깔의 푸른 하늘도 보이고 밤하늘에는 억만개의 별들이 반짝이는데 혼자 슬픔 속에 갇혀 산다. 타인의 방에 문 두드릴 용기를 갖지 못하고 내 것이 네 것이 되지 못하는 슬픔에 젖어 산다. 사는 게 무겁고 버거우면 갇힌 문을 열고 나오라. 타인의 방으로 들어 가라. 녹 슨 안방 문고리 열고 버선발로 삐걱이는 대청마루 건너면 깃털처럼 가벼워지리라. 건넌방에서 곤한 잠 청하던 손님이 내일 떠날 길의 방향을 알려줄 지 모른다. 사립문 나서면 아직은 지팡이 없이 먼 길 갈 수 있다 말해주리라.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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