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고난이라는 선물

고난이라는 선물

잎사귀 흔들린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인다
고난이 네 안에 자라고 있어
심히 흔들린 후
나락으로 땅 위에 떨어지고
바람은 날 부축이고, 난 기대고


오래 뿌리 내리고
당신 품에서 당신 손길로
다시 세워지는 날
잎사귀 흔들린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인다
생명이 네 안에 자라고 있어(시카고 문인회장)

지난해 뒤뜰에 큰 나무 두 그루를 잘라냈다. 몇 년 전부터 듬성듬성 죽은 가지들이 보이더니 지난해 봄엔 잎사귀를 전혀 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사람을 불러 밑둥까지 나무를 베었다. 늘 든든히 제자리를 지키며 수고했던 나무들이었다. 사라진 곳이 휑해 자꾸 눈에 밟혔다. 지난 몇해동안 뒤돌아보면 잘려나간 나무들만 서 너 그루가 더 있고 폭설에 쓰러진 향나무도 3그루나 된다. 긴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 햇빛이 들지 않아 제대로 자라지 못한 묘목들도 있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몇해동안 바뀌어진 환경과 고난 속에 숨 죽이고 그 뿌리를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시카고엔 4월에도 눈이 내리고 추운 날이 많아 일찍 핀 꽃봉오리가 서리를 맞아 죽어나가기 일쑤이다. 완연한 봄이 찿아오는 5월이 되어서야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진다.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바로 양분과 물 그리고 햇빛이라고 한다. 올해는 많은 양의 토양을 덮어주었고 비도 자주 내렸다. 게다가 사라진 나무 사이로 많은 햇빛이 더해져서인 지 작년에 비해 꽃들이 많이 피었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빛깔도 짙어졌다.

인생의 가치도 그렇다. 어려움과 고난의 캄캄한 터널을 지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목놓아 울어본 사람만이 더 진한 색깔로 삶의 향기를 낼 수 있다. 글도 힘겹고 어려울 때 더 깊어지고, 노래도 간절할 때 감동을 준다. 우리의 하루도 힘겹고 서러울 때 더 절실해지고 성숙해진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별빛은 더욱 빛난다. 고통이 내게 선물이 될 때 비로소 자족이라는 행복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라고 불리우는 난도 봄에 평지에 피는 춘난보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자란 풍란은 잎의 뻗음이 틀리다고 한다. 거친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더 곧아야 하고 꽃대궁도 더 굵어야 한다. 벼랑 끝에 핀 꽃일수록 짙고 향기롭고 아름답다.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해 가장 화려한 색으로 가장 진하게 향기를 뿜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의 싸움이다. 자기성장도, 생명도, 꽃도 자기와의 싸움이다. 움켜진 손에 힘을 빼고 버릴 줄 알게 된 것은 고난이 바로 나를 향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였다.

이전엔 더 힘을 주어 움켜쥐느라고 고통이 배가 되었었다. 고난은 나의 잔가지를 쳐내게 하고 무거움 짐을 내려 놓게 한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내게 불순물인지 자양분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몸살을 앓고난 후 저마다 행복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정원은 다시 생기를 찿았다. 바라보고 있는 나의 얼굴도 함께 즐거워진다. 짙은 라일락 향기로 저물어가는 늦은 봄날은 고난이 주고 간 아름다운 선물로 색색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다. 지금 뒷뜰은 꽃들의 노래로 한창이다.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