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들꽃같은 사랑을 위하여
여름철 푸른 녹음 사이로 하얗게 눈밭을 펼쳐보이는 들꽃의 이름은 개망초다. 을사조약 체결로 나라가 망할 때부터 번성했다고 하여 개망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수를 놓기에도 예쁘고 쉬운 데이지과의 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는 꽃말은 이름과는 판이하지만 꽃의 특징을 제대로 표현한 내용 같아서 공감이 된다.유명한 사랑장인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이나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배운 근사한 표현은 잠시 접어두고, 각자가 경험해온 사랑을 심중에서 들여다본다면 들판에 각양 각색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거리는 들꽃 같은 사랑이 아닐까. 꽃말과 꽃이름, 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꽃의 자리에 사랑을 대입해보면 오랜 사랑의 이름이 생각날련지도 모른다. 영국 태생의 미국인 소설가 닐 게이만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은 후 이런 정의를 내렸다: “사랑은 가슴을 열고 들어와 심장을 열어제치는데 그것은 곧 누군가가 당신 안에 들어와 당신을 망쳐놓는다는 의미다. 사랑은 영혼을 다치게 하고 당신 안에 진짜로 들어와서 고통으로 당신을 찢어놓는다. 나는 사랑이 싫다.” 망국의 조짐을 연상시킨다고 개망초라 불린 꽃과 닮은 사랑의 정의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사랑으로 인하여 아무 조건 없이도 기쁨으로 채워지는 영혼이 있다. 참된 사랑은 항상 사람을 좀 더 나아지게 하고 또 나아지고 싶어지게 하는 까닭이다. 사랑의 대상이 문제가 아니고, 상호적인 관계의 유무와도 관계없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부유함 속에서 더 나은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으로서의 사랑이다. 사랑의 대상이 잘되기를 바라는 무한한 애정이 함께 할 때의 사랑이다. 참된 사랑의 정의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고 창의력을 일깨운다.
쇼팽은 바르사뱌의 음악학교에서 성악가 콘스탄쟈 글래드코우스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심으로 존경할만한 이상적인 여성을 찿았다고 썼다. 매일밤 꿈에 그녀를 그리면서도 마음을 토로하지 못했던 쇼팽은 그녀에 대한 영감 속에서 19세 때 처음으로 F단조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했다. 많은 음악 평론가들은 쇼팽의 곡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악장이라고 평가했다. 쇼팽 자신도 아름다운 봄날 달빛 아래서 수천가지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있는 이를 연상시키는 차분하고 울적하고 낭만적인 곡이라고 소개했고 특히 2악장 라르게토 부분은 그녀를 떠올리며 작곡했다고 썼다. 쇼팽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작곡한 또 다른 곡 B단조 왈츠, 69번 2악장에 대해, “내가 자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듯이 피아노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 했다네”라고 고백했다.
콘스탄쟈는 1830년 파리로 떠나는 쇼팽의 송별파티에서 쇼팽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자기를 향해 품었던 연정에 대해서는 그의 전기를 통해서 그의 사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쇼팽이 그녀에게 느꼈던 한 때의 사랑은 인류에게 아름다운 유산을 남겼다. 그대에게는 행여 이름만으로도 불려나오는 기억, 고독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그리운 이가 있는가. 바람이 흔들고 가는 들꽃같은 사랑의 모습으로.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 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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