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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진 기자의 취재현장에서] 다문화사회로 가는 한국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5/10/29 16:56

광화문 숙소에서 쉬다 먹거리가 생각나 밖으로 향했다. 잠깐 걸어 나가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컵라면을 사 먹는 것은 미국에선 접할 수 없는 쏠쏠한 재미다.

진열대를 보고 있는 어깨 너머로 유창한 중국말이 들렸다. 내 질문엔 또박또박 한국말로 설명했던 종업원과 중국 손님과의 대화였다. 미국에선 이민자의 신분인 나는 종업원에게 호기심 반, 반가움 반으로 물었다. “한국분이세요, 아니면 중국분인데 한국말을 잘하시는 거예요?” “중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그의 한국어 실력에 내심 감탄하며 답했다. “네, 전 한국 분인 줄 알았어요.”

한국이 급속하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13년 5월 현재 체류 외국인은 150만 1천 761명, 한국 전체 인구의 총 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2020년엔 외국인과 그 자녀의 수가 전체 인구의 270면명에 달할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한 곳인 명동에 나가 보니 곳곳에 외국어로 표기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외국어로는 상호가 큼직큼직하게 쓰여져 있는 반면 한국어는 귀퉁이에 숨어 있다. 과장을 좀 보탠다면, 외국어를 모르면 약속장소도 제대로 찾지 못할 형편이었다.

한국이 신(新) 다문화국가로 부상한 데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 결혼 이주 여성 증가 등이 주요인이다. 최근엔 한류에 매료된 유학생, 관광객 증가 또한 다문화 착근의 한 축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 순수 혈통만을 고집하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된 셈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과연 사회적, 정책적으로 이민자, 또는 체류 외국인들을 수용할 만큼 성숙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우선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한국 문화에로의 동화(同化)’에만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점은 우려가 되고 있다. 즉 외국인들이 한국 생활,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불편함을 해소해 주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여러분들이 무조건 한국 사회에 동화되고 따라야 한다’는 비사회통합적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근한 시행착오의 예로 세계 최대의 다문화국가라는 미국은 과거엔 동화 개념의 ‘Melting Pot’를 강조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 다른 인종·언어가 공존한다’는 의미의 ‘Salad Bowl’로 개념을 전환한 바 있다. 결국 소수의 자율성, 특성은 존중돼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 내 고질적인 인종차별주의 역시 다문화 성숙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200명 중 타인종, 이주 노동자와 이웃이 된다는 것에 부정적으로 답한 사람이 각각 34%, 44%였다고 한다.

귀화인으로서는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 의원을 향한 불특정다수의 인종차별 발언은 외국인, 다문화 사회에 대한 낮은 관용 수준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학력위조 논란, 인신 차별성 공격은 외국인 차별, 타문화 혐오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게 다수의 시각이다.

어차피 지금 와서 다문화 사회의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지의 여부, ‘다문화 주장은 개방 콤플렉스?’라는 등의 때늦은 주제를 놓고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만큼 이제 좀 더 현실적이고 포용적인 다문화 정책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창할 필요 없이 은행, 관공서, 일터에 다국어로 제작된 안내서를 배치해 둔다면 외국인들의 초기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법 체류, 사기 이주 등을 근절하기 위해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고용주·불법 이주 브로커에 대한 단속 강화는 장기적으론 건전한 이민 문화가 정착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기초 교과 과정에 다문화에 대한 이해 과정을 포함함으로써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다문화적인 습관을 배게 하는 것도 통합 체계 구축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만산홍엽의 가을, 짧은 체류기간 동안 유독 곳곳을 누비는 외국인들에 시선이 갔던 이유는 내 스스로가 이민자로서의 애환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언어에 대한 거부감 없이 모두가 뜨개조각 처럼 이어지는 한국을 기대하며 난 다시 이민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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