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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안녕! 다시 안녕?

#이별 편지

안녕!
이 년 동안 정들었던 콜로라도 덴버여. 또 다시 안녕이고 이별이다. 콜로라도 너가 안고 있는 자연의 무한함을 잊지 않을게. 로키 국립 공원에서 만났던 무스, 엘크, 사슴들아 나는 너에게 그저 스쳐 지나간 한 마리 인간 이었겠지만, 내겐 너와의 스치는 만남은 삶의 소중한 쉼표였단다. 일상의 어려움, 고난함을 잊게 해 주었던 글랜우드 스프링스의 온천물, 따듯하고 특유의 유황 냄새가 독특했던 파고사 스프링스의 온천물아, 잠시 안녕이다. 너에게 가려면 또 다시 남편을 설득하고 꼬득여야 험난한 운전을 해서 닿을 수 있는데, 나는 너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나 간단다. 우리는 덴버에서 새로운 목적지까지 16시간의 운전을 앞두고 있어.
덴버 다운타운! 16가 길은 내게 그래도 미국에서 걸을 만한 도시의 맛을 알게 해 준 곳.
그 16가를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아 언제 나는 이러한 빌딩 숲의 한 자리, 내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16가 한 가운데 있는 AMC영화관에 눕다시피 앉아서 보는 영화의 맛은 카라멜 팝콘보다 달고 달았어.
오클라호마에서의 삼 년을 뒤로 하고, 콜로라도에서의 이 년을 이제 다시 뒤로 하고 나는야 또 다시 남편을 따라 미국의 북서부로 향한단다. 이 크나큰 미국 땅, 그래도 군인 남편 덕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눈으로 구경하는 즐거움을 잊지 않으련다. 콜로라도여 고마웠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이사를 앞두고
콜로라도에게 이별 편지를 써 보았다. 지난 5년의 이민생활을 되돌아보면, 나는 늘 욕심은 많고, 마음은 조급했다. 무엇이든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과 불만만으로 일상을 스스로 흐트려 트린 건 아닌가, 반성이 된다. 이민 오 년이면 사실 길지 않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흘러야 해결되는 것이 있는데, 나는 이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애꿎은 남편만을 닥달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제목이 Bird by bird이다. 새 한 마리 한 마리. 모든 일을 너무 한 번에 한꺼번에 하려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란다. 그런데 나는 욕심만 앞서서 자꾸만 ‘빨리 빨리, 무조건 꼭대기’를 외치기만 했다. 사실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루의 일을 하나씩 이루어야지 하는 성실하고 단단한 자세다.
다시 새로운 주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군인 가족의 삶이란 이렇듯 거주지 변경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불가능할 것 같은 유연함을 필요로 한다. 오클라호마에서의 삼 년과 콜로라도에서의 이 년, 앞으로는 시애틀에서도 한참을 달려야 하는 중소도시로의 이동이다. 결혼 전에는 ‘미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남편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그 이동이 주는 자유로움에 홀딱 반했다. ‘그럼 공짜로 미국 어디든지 구경할 수 있는 거야?’라는 내 속마음은 되돌아보면 참 순진하고 철없었다.
막상 군인가족으로 5년을 살아보니, 우선 그 ‘어디든지’에는 내가 원하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모두가 원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빈번한 이사는 군인 배우자의 직업을 쉽게 망가트리고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참으로 발버둥을 치고 또 쳤다. 서점 캐시어, 커피숍 캐시어, 테스팅 센터 직원, 한국어 언어 소프트웨어 테스터, 공립학교 대체 교사, 한국어 교사, 여름 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누가 ‘이민 전에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세요! 당신의 삶의 지침서’를 내 앞에 펼쳐 주었던가? 살기 전에는,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게 투성이인 게 이민 생활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그래도 나는 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다. 속풀이 겸 미국에 사는 한인 여성들이 익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시 유에스에이 사이트에 속풀이글도 남겼다. 답글로 “힘내라, 직업을 구할 때도 처음부터 너무 크고 높은 거 보면 안된다. 나 역시 시급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대기업 다닌다.” 이런 익명의 조언들이 나의 우울한 회색빛 하루에 등불을 켜 줬다. 그래, 다시 하나씩 하나씩 이어가면 된다. 계단을 밟듯이 말이다.
이사를 덩달아 따라가야 하는 나는 이사로 인한 경력, 직업 문제로 혼자 끙끙대는데, 남편은 또 다시 새로운 부대에서 적응 하려니 힘이 드는지 ‘밤새는 토끼’ 같다. 온갖 신경이 쭉쭉 날이 선 탓인지, 밤늦게 잠이 들고 새벽이면 또 핸드폰을 보고 있다. 말릴 수 없다. ‘핸드폰 끄고 그만 자자’라고 말을 해도, 내 입만 아플 테니 말이다. 나를 부양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갖고 있는 남편은 나보다 더 큰 부담과 짐을 안고 이사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단단한 마음. 누구에게나 이동은 쉽지 않다. 가끔 남편이 하는 말은 ‘어떤 것이든 모든 이에게 쉬우면 너도 할 수 있어. 그런데 모든 이들이 하지 못하는 거, 그런걸 하니깐 대단한 거야.’ 내게 지금 ‘모든 이들이 하지 못하는 것’은 갑작스런 고연봉의 직업이 아니라 차분하게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낯선 도시에서 너와 나의 일상을 새롭게 꾸려나가는 것. 한번 더 외쳐보자. Bird by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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