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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목사의 목회칼럼: 치매인듯 치매아닌 치매같은 사랑고백

얼마 전, 장로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시는 권사님 한 분을 찾아 뵈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1년 사이 몰라볼 정도로 많이 늙으셨다. 권사님은 약간의 치매증상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 일행을 알아보실까 걱정했는데, 외로움 때문일까?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권사님은 30년동안 교제하시던 장로님을 한 눈에 알아보셨다. 환한 웃음으로 장로님 부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말씀하셨다. 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신 권사님은 “누구시냐?”고 물으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본인의 기억력이 아직 쌩쌩하다며 찬송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부르시며 기억력을 과시하시기도 하셨는데 올해는 치매 증세가 심해 보이셨다.

약 1시간 머무는 동안 권사님은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우리 애들은 착해요. 우리 애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은 한번도 안싸워요.” 그리고는 손주를 보러 가야 한다며 보행기를 짚고 기어코 복도로 나가셨다. 간호원들도 권사님을 보며 손주를 보러 가냐고 웃으며 묻고 지나갔다. 자주 있는 일인가보다. 한바퀴 휘 돌고 돌아오시면 권사님은 다시 본인의 자녀들 얘기를 하셨다. “우리 애들은 착해요. 우리 애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은 한번도 안싸워요.” 그리고는 오지도 않은 손주를 봐야한다며 다시 보행기를 짚고 복도로 나가셨다.

치매 앞에 효자, 효녀 없다던데, 그래서 치매를 늘 불편하게만 생각했다. 반복되는 말씀과 행동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생겼다. 그런데 권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평소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치매를 앓고 계신데도 자식에 대한 걱정과 사랑은 여전하시구나.’

아무리 나이가 든 자식이라도 부모님 눈에는 늘 어린 자식일 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치매증세 없이 건강하시지만, 40대 중반의 아들과 통화할 때면 늘 같은 소리를 반복하신다. “기도 열심히 해. 성도님들 잘 보살펴 드리고. 차 조심 하고, 아이들 잘 돌봐.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건강관리 잘 해야 돼. 아내를 많이 도와줘.” 매번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을 때 쯤이면 신신당부 하신다. 잔소리 같다가도 틀린 말씀이 아니기에 “예”하고 매번 새롭게 다짐을 한다.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늘 한결같으시다. 병상에 누워 계셔도, 치매를 앓고 계셔도 변함이 없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생각이 나서가 아니라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생각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마다 뼈 마디마다 골수에 사무치도록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치매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공통적인 현상은 뇌신경 수축과 혈액공급의 부족에서 오는 뇌 손상이다. 단기 기억상실과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생기고, 공간인식의 어려움 때문에 자주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일시적인 현상으로 시작되지만, 서서히 진행되어 병세가 나타날 때쯤이면 이미 오랜시간 진행된 상태로 확인이 된다고 한다.

요양원에 계신 권사님을 뵈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무리 뇌세포가 죽어가고, 자신의 생명이 희미해져가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뇌가 아니라 가슴이기 때문이리라. 본인의 기억이 희미해 지려 할 때, 자식을 잊지 않기 위한,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결코 포기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수없이 반복하신 것은 아닐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내 자식에 대한 생각만큼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두가지 면에서 목회적 적용을 해본다. 첫째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의 마음에서 자신의 존재가 잊혀져 가고 십자가에서 그 생명이 식어가도 우리를 향한 그 사랑 때문에 어떤 고통도 멈출 수가 없었다. 죽음의 고통과 죄의 고통,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이 처절하리만큼 고통스러워도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치매증상이 없으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늘 영광은 포기할 수 있어도 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으신 예수님의 사랑고백이시다.

둘째로,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이웃사랑의 마음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관계가 어긋나고 나에게 해를 안겨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를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사랑하기 힘든 그들을 위해 처음은 힘들어도 결국은 예수님의 설득(?)에 못이겨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점차로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은 시간을 정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셨고, 틈날 때마다 기도하셨다. 그 기도의 내용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으리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기도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는 동안에도 자신을 욕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정말 힘든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훗날에 우리가 치매를 앓는다 해도,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중이어도 무심결에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들을 위한 기도여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여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의해서 이 땅에 이뤄진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우리 개개인은 평생토록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던 사무엘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 치매를 앓더라도 평생토록 기도했던 기도의 내용이 우리 입가에 흘러나오길 소망한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요양원에서 외로이 지내시는 권사님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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