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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이민 6년차 새해

2019년 새해가 밝았다. 2018년의 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게 일에만 파묻힌 며칠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새해라고 난리다. 내게 작년은 내내 마음이 숨가빴고 하반기에 조금 몸이 숨가빴다. 마음이 숨가빴던 이유는 서른 중반에 결혼 이민으로 미국땅을 밟아,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늘 마음이 조급했다. 조급한다고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조급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 줄을 몰랐다. 사실 그런 법을 안다면 천하가 무섭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을 스스로 안정시키고 늘 차분함을 잘 유지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그 가르침을 겨울 산행을 통해 배웠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곳은 워싱턴 주에 있는 중소 도시다. 워싱턴 주는 어딜가나 높고 푸른 소나무가 늠름하게 그 땅을 지키고 있다. 얼마나 이러한 자연이 많은지, 워싱턴 주 자동차판에도 그 나무들이 꼭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2019년 새해 맞이를 기념해 남편과 나는 한시간 남짓 얼음이 깔린 산을 걸었다. 그래도 산에 오면 많은 것들이 잊혀졌다. 한국에 계신 친정 식구들 생각,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일에 대한 욕심 등 갖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똘똘 뭉쳐져 있다가, 그래도 산에 와서 높고 높은 푸른 나무들, 거기에서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체증이 가라앉듯이 나는 기분이 든다.

지난 8월엔 분명히 똑같은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씽씽 신나게 다녔는데 오 개월이 지난 지금은 눈이 쌓이고, 그 위에 비가 와서 얼음이 되어 꽝꽝 언 땅이 되었다. 이 땅이 다시 예전의 보들한 흙길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시간만큼 절대적이고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시간 앞에선 장사가 없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지난해 내내 어리석게도 이 시간과의 사투를 혼자 속으로 벌였는지 모르겠다. 얼른 더 어른이 되었으면 했고, 얼른 더 좋은 직장을 잡았으면 했고, 얼른 더 많은 돈을 벌기를 바랬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야 한다. 뭐든지 기다림과 때라는 재물이 필요했다. 뭔가가 이뤄지고, 완성이 되려면 그만큼의 인내와 기다림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작년 이맘때 내 노트북에는 ‘올해의 계획’이라는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 그 파일에는 야심차게도 4개의 핵심 단어가 있었고, 그 핵심어 아래에 무엇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이루겠다!고 야무지게도 써 놓기도 했으며, 심지어 3개월에 한 번씩 각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써 놓기도 했다. 누구에게 보고할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혼자 야단 법석을 떨었다. 올해는 우선 이 모든 큰 핵심어를 내려놓기로 한다. 대신 단 한개의 단어만 쓴다. “현재”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온다.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해보자.

그러다 보면 ‘당장!’이라는 조급한 마음과 이별하고, 현재 몰입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이 들면 워싱턴 주의 소나무들을 생각하자. 저 높고 높은 나무들이 저 하늘까지 닿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와 노력의 시간을 쌓았는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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