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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 길냥이와 새댁(1)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찾는 일은 완전 범죄를 위해 공소시효가 지나도록 사체가 발견 되지 않을 만큼의 은밀한 장소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 지면서 ‘완벽한’과는 진즉에 타협을 하고 ‘안전한’ 아니 ‘적당한’ 장소라도 찾아 볼 량으로 며칠째 무거운 배를 힘겹게 감싸 쥐며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적어도 네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내 안의 온 창자를 헤집고 다니며 구석구석 뒤져서 먹을 것을 찾는 듯 새끼들이 배 안에서 꾸무럭거릴 때 마다 조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걸음은 느려졌다. 출산일을 계산해서 사랑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 내리는 한 겨울이 아닌 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었던 새끼들의 아빠가 문득 떠올랐다. 뜨겁게 사랑을 하고, 늘 그렇듯 우리네 습성처럼 어디로 사라져버린 그가 오늘은 내 몸이 버거운 만큼의 무게로, 딱 그 만큼 보고 싶어졌다.

몸을 풀 장소를 찾는 조건은 딱 세 가지다.
진통에 힘겨워서 밤새 신음소리를 내어도 빈 깡통이나 막대기를 던지지 않을 잠귀가 어두운 사람들이 사는 곳, 내 새끼들이 태어나서 햇살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어도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 가끔 배수구에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대충 치우는 깔끔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적어도 두 번째 조건이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내가 돌맹이, 깡통 세례를 맞아도 이쁜 아가들을 무사히 만날 수만 있다면 첫 번째 조건은 가뿐히 무시 할 수 있다. 그리고 불안하긴 하지만 잠깐 멀리 가더라도 내 젖이 돌 정도의 음식만 구할 수 있다면 세 번째 조건도 상관없다. 인적이 끊긴 야심한 밤에 음식물 수거용 비닐을 뜯으며 식량을 구하는 것도 은근 스릴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내 새끼들이 눈도 못 뜨고 낑낑거려도 귀엽다며 집어가지 않을 무심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하루아침에 새끼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나는, 인간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성애가 가득한 길냥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경남 J시에서도 번화하지 않은 변두리 마을이다. 이십년 전만해도 제일 번화한 곳이었으나 부산으로 바로 가는 길이 뚫린 이후 신시가지라는 곳에 고층 아파트들과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이곳은 연립주택들의 몸집만큼이나 작아져 버렸다. 엄마 품을 처음 떠나 정착한 곳이 대형 마트를 끼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이 마을에서 불과 내 걸음으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은 화려한 네온사인들, 빌딩 옆 화단에 숨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간혹 대형 마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비트가 강한 음악 을 들으며 꼬리를 흔들며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잡담은 나를 들뜨게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이 음식물 수거쓰레기통에 깔끔하게 담겨져 버려서 매끼마다 식사를 구하는 건 전쟁이었다. 같이 어울리는 무리에서 음식물 수거통을 쓰러트려서 와르르 쏟아지는 음식들로 파티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정작 우리키의 세배가 넘는 육중한 수거통을 바라만 보다가 수거통에 묻은 국물만 핥을 뿐 아무도 무모한 시도 따윈 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인간에게 복부를 발길질 당해 갈비뼈가 나가길 십상인, 생쥐들이 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같은 그런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품속에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털을 세우고 요염한 듯 졸린 눈으로 우리들을 거지 보듯 하는 귀족냥이들의 눈빛은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엄마 품을 떠나 홀로 독립해서 만난 나의 첫 번째 친구, 하얀색 몸에 엉덩이와 한쪽 눈에만 까만 점이 두드러지는 고양이는 화려하기만 하고 실속이 없는 대형마트 촌을 버리고 우리 걸음으로 하루 정도 걸리는 시골마을로 떠나갔다. 친구는 시골 마을의 장점들을 늘어놓으며 나를 유혹했지만 엄마 젖을 빨 무렵부터 지겹도록 들은 ‘시골에는 쥐약 천지야.

쥐약 묻은 음식을 먹으면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뒹굴 거리다 죽는단다.’던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다. 물론 방정맞게 엄마에게 들었던 말 따위를 하얀색 몸에 엉덩이와 한쪽 눈에만 까만 점이 두드러지는 친구에게 하진 않았지만 그의 새로운 세계가 그다지 궁금하거나 설레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제안을 뿌리친 건 내 생애 제일 잘 한 일이었다.

친구를 보내고 외롭게 아파트 놀이터의 덤불에 지낸지 삼일 만에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남자, 나의 첫사랑을 만났으니까. 검은색과 황색의 얼룩이 듬성듬성 있던 나와는 달리 햇빛을 받으면 순금처럼 반짝이는 황갈색 얼룩이 누군가가 일부러 구성이라도 해서 그려 넣은 것처럼 조화롭게 배치되어있는 그와 사랑에 빠진 건 볼품없이 초라한 나에겐 기적이었다.

그와 나는 뜨겁게 사랑했다. 사람들이 끝내지도 않고 대충 버린 커피 컵을 핥으며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여유 있는 티타임을 즐겼고, 대형 마트의 자동 유리문 옆에서 간간히 새어나오는 에어컨 바람으로 도둑 피서를 즐기며, 쿵짝쿵짝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화장품 가게 옆 골목에서 우리 둘만의 댄스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시선을 피해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없는 놀이터의 미끄럼틀 위였다. 아침볕에 데워진 따뜻한 바닥보다 더 맘에 드는 것은 빨간색 지붕덕분에 한낮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어린이 집에도 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들 때문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 곳은 우리 둘의 밀회의 장소였다.

그는 겁이 없었다. 대범하게 언제나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대형마트 앞에 있는 화단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내 놓고 사람들 구경을 즐겼다. 사람들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나른한 듯 늘어져 있던 귀족냥이들도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내 남자를 보면 귀를 쫑긋 세우고는 실눈을 뜨고 요염한 미소를 보내곤 했다.

그는 야인의 외모는 아니었지만 뼛속까지 야인이었다. 바닷가에서 왔다던 그는 두 달을 채 못 넘기고 대형마트를 떠나자고 했다.
지금 내가 헤매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미리 정찰을 끝냈다며 신나게 떠들어대던 마을, J시였다.

-6월 18일(토)자 문학면에 계속됩니다.


허선영 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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