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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길냥이와 새댁(2)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6/28 08:57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그는 나에게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과, 매일 업데이트 되는 최신 유행곡과, 산뜻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의 모습들과는 안녕이지만 사랑하는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내 남자와 건강한 내 아이들만 있다면 쥐약 묻은 음식이 넘쳐 나는 첩첩시골이라도 나는 괜찮았다.

그렇게 찾은 J시는 우리들이 살기엔 천국 같은 곳이었다. 우리처럼 사전 답사를 하고 작정을 하고 왔는지 이리저리 방랑자처럼 헤매다 굴러들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은 길냥이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 담과 담 사이를 점프하는 아슬아슬함과 간혹 옥상에 널린 생선들을 입에 물고 주인에게 쫒기다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농약이나 쥐약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꽉 닫힌 대형 업소용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약속하게 바라볼 필요도 없었다.

나와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내 남자는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음식 수거용 쓰레기봉투를 손과 입을 이용해서 뜯어서 끼니를 해결 했고, 운이 좋은 날은 살이 꽤 붙어 있는 생선으로 포식을 했으며 간혹 제법 남은 소주나 맥주, 막걸리 병을 획득한 주말 저녁엔 여러 무리의 고양이들과 빈 폐가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새끼들은 꼬물꼬물 잘 자라고 있었고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내 남자는 여전히 나의 배를 혀로 핥아 주며 사랑을 확인 시켜 줬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무료할 즈음, 그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던진 막대기에 다리를 맞은 뒤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절룩이는 하얀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까만 고양이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했다고도 했고, 풍선만한 몸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담장 위에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뚱보는 길냥이가 너무 많아 골머리를 앓던 시에서 보낸 사람에게 잡혀 갔다고 했고, 달리기 좋아해서 주변 마을 구경 다니기 좋아하는 황갈색 줄무늬에 왕발을 가진 대발이는 옆 마을에서 맥주 배달 트럭에 치여 죽었다고 했다.

어느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도 없었고, 듣는 말마다 좋은 말은 없어서 굳이 사실인지 확인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게 닥친 현실은 출산일이 머지않았다는 것과 그가 나를 떠났다는 것이다.

크게 번화하지 않는 열십자 도로의 모퉁이에 조그만 세탁소가 있었다. 그 세탁소 옆의 목욕탕은 패가가 된지 벌써 수년은 되어서 주말에 광란의 밤을 보냈던 우리들의 은밀한 장소였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막아주는 목욕탕과 세탁소를 등지고 있는 골초인 노총각이 사는 뒷집의 조그만 화장실의 지붕에 있는 노란 물탱크 옆에서 새끼를 낳기로 결정했다. 혼자 살기엔 제법 큰 집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총각은 홀로 살고 있었다.

가끔씩 낮이나 밤에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서 티브이를 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교대 근무하는 직업일 것이다. 물탱크의 구석진 곳이 아닌 총각이 사는 건넌방에서 몸을 푼다고 해도 총각은 알아채지 못할 것처럼 집에 있는 날에도 밖을 나오는 일이 없었다. 혹여 밖을 나온다고 해도 근처를 조심스럽게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고도 무심한 듯 담배만 피워대는 총각이 맘에 들었다.

이웃한 세탁소 할머니는 내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차린 듯 물탱크 옆에 자리를 잡자마자 오래된 잠바와 아직은 쓸 만한 수건을 옥상에 가는 길에 던져주었다. 그리고 가끔씩 건네는 매운탕의 생선 대가리를 먹을 때면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가 없이 혼자라는 설움도 잠시나마 잊혀졌다.

“할머니, 할머니, 고양이 배 봤어요? 새끼 밴 거 맞죠?”
누워서 편히 숨 쉬는 것조차도 힘든 어느 날 오후였다. 이층집에 세 들어 사는 젊은 아이엄마가 예쁘게 단장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다 호들갑을 떨며 마당을 쓸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그 여자를 새댁이라고 불렀다. 말도 못하고 더더군다나 걷지도 못하는 응애응애 울기만 하는 갓난아기를 아기띠로 업은 채 무릎길이의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내 다리의 반 정도나 되는 높이의 구두를 신은 그녀는 신기한 듯 담장너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자 봤나? 날 때 다 됐을끼그마는.”
“그랬구나. 난 이것저것 많이 먹어서 살찐 고양인줄 알았는데,,, 너도 참,,고생길이 훤하다.”
“근데 그리 이쁘게 하고 어데가노?”

고생길이 훤하다는 새댁의 말에 약간 빈정이 상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걷어내고 기껏 ‘야옹’ 한마디 하고 돌아올 기력도 없었다.
“진아 백일 사진 찍으러 가요.”
“예전에 백일이라카지 않았나? 한 달도 더 된 거 같은데?”
“백일때는 애들이 목도 잘 못 가누고 그래서 좀 더 똘망똘망했을때, 4개월쯤 찍는거에요. 요즘 유행이 그래요.”

백일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으며 쏟아지는 햇살에 배가 보이게 누워서 꼬리를 슬렁 흔들며 달아나려는 졸음을 붙잡아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았다.

“내가 오빠 기다리면서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아빠가 와야 가족사진을 찍던지 하지, 내가 미혼모냐? 아침에도 말했는데 잊어버렸다는 게 말이 돼?”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와 나처럼 금슬이 좋은 부부가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싸워볼 품새였다. 새댁의 앙칼진 목소리와 남편의 쇳소리가 담장을 넘어와 내 귀에 꽂혔다. 배가 아파왔다. 볼품없는 나를 닮았는지 아니면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를 닮았는지 알 수 없는 새끼들이 더 이상 좁아서 못살겠다며 내 창자들을 붙잡고 줄다리기를 하기도하고 비틀기도 하는 듯 참을 수 없는 복통에 식은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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