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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길냥이와 새댁(3)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6/28 09:03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구름에 달빛도 가려 어두컴컴한 밤에 총각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티브이 소리가 없었다면 새 생명의 신비를 맞보기도 전에 공포를 맞봤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야옹,,야옹,,야아오옹, 야앙!”

우리네 습성이 그런 거라고, 나를 떠난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를 이해하고 용서했건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이 원망으로 바뀌면서 비명이 되어 튀어나왔다.

한 마리만 먼저 나오면 나머지 새끼들은 힘주지 않고서도 나올 것 같은데 도무지 한 마리를 낳는 것도 너무 힘에 부쳤다. 새댁과 남편의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의 고통도 점점 더해지는 듯 했다.

“아, 씨발! 돌아삐겟다. 내 백일 사진 한번 안 찍은기 이리 잘못한기가? 낸중에 날 받아서 다시 찍은믄 된다 아이가?”
“내가 지금 사진 한 장 안 찍었다고 그러는 거야? 오빠 태도가 문제잖아. 난 독박육아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오빤 오빠 할 거 다하고, 나한테 이렇게 살라고 결혼하자고 했어? 내가 이렇게 거지같이 살려고 서울서 이런 시골까지 오빠 쫒아 온줄 알아?”
“뭐? 거지? 그래, 내랑 사는기 니가 거지같이 사는기지. 알았다, 혼자 잘 묵고 잘 살아 봐라. 이 거지 같은 놈이 사라지삘라니까.”
“지금 내 말이 그런 말이 아니잖아!”

현관문이 덜컥 열렸다. 나는 홧김에 남편이란 놈이 신발이라도 집어 던지지 않을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꾹 참았다. 소리를 내어도 소리를 내지 않아도 배가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잠바를 어깨에 걸치고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타다다 하는 발소리만 남기고 계단을 내려가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곧장 새댁이 뒤쫓아 나왔지만 빼꼼히 열린 철대문 사이에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야옹,, 야앙,, 야하앙!!”
새댁이 피워대는 싸름한 담배연기를 맡으며 내 첫 새끼가 세상 빛을 보았다. 총각도 잠들어 새어나오는 불 빛 하나 없는 온통 까만 세상에 새댁이 피우는 담배의 빨간 불빛은 오히려 신비하기까지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까지 내 뱃속의 새끼들이 모두 무사히 눈도 못 뜬 채 내 젖을 찾아 꼼지락대었다. 네 마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난히 작은 막내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다행이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를 닮아서인지 아니면 내 새끼라서 인지 다섯 마리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어머,, 할머니 봤어요? 고양이가 새끼 낳았어요. 몇 마리야?”
새댁은 계단에서 담장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내 새끼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야옹,,, 양,,,야아옹!”
혹시나 지난밤 싸움에 뒤끝으로 내 새끼들에게 해코지를 할 까봐서 털을 꼿꼿이 세우고 일부러 더 앙칼진 목소리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새댁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씩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야! 안 데려가. 내 새끼 하나도 벅차 죽겠는데, 니 새낄 데려가겠니?”
“야옹,,, 야앙,,,”
“어쭈? 새끼 낳더니 완전 사나워졌네?”
“양,,, 야항”

눈도 못뜨는 새끼들이 품안에 있으니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털을 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안 본다 안봐. 미역국은 먹었냐? 너도 엄마라고 참나,, 웃긴다.”

새댁은 피식 웃다가 이내 터덜거리며 계단을 내려가서 할머니에게 간밤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네 마리 아니면 다섯인데,, 할머니, 길냥이 데려다 키워도 돼요? 새끼가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여운데,, 확,, 한 마리 집어갈까?”
“괭이 새끼 귀엽다 말고 자네 자식이나 잘 키운나. 말 몬하는 아들도 애미애비 싸운 줄은 다 안다. 하이고마, 어제는 둘이서 투탁거리쌌제, 고양이는 새끼 논다꼬 울어쌋제, 내 잠 다잤다.”
“반대하는 결혼해서 오빠 하나만 믿고 내려왔는데, 나한테 잘해 줘야 되는 거 아네요? 어제도 진아 백일사진 찍는데 연락도 안돼서 2시간이나 기다리다 그냥 왔단 말예요.”

새댁은 다시 생각해봐도 억울한 듯 울먹이다 이내 울음보가 터진 아이처럼 서럽게 울어댔다. 할머니는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 피곤한지 새댁의 울음을 오래 들어줄 마음이 없다는 듯 새댁을 얼러서 이층으로 올려 보낸 심산으로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내 지짐했데이. 기분 나쁠 때 맛난 거 무면 쪼매 낫다. 얼른 괭이 한 장 던져 주고 가서 무라. 어제 몸 푼다고 기운 없을끼고마는.”

다섯 마리가 먹기에는 젖이 부족한 거 같아서 근처 쓰레기통이라도 한번 뒤적거려 볼까 하던 차에 할머니의 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티브이만 보는 무심한 총각, 지나가다 심심하지 않게 쫑알대는 새댁에 생색내지 않고 툭툭 온정을 던져주는 할머니까지, 나는 정말 좋은 이웃들은 만난 것 같아 행복한 기운이 꼬리까지 전해졌다.

눈도 못 뜨던 새끼들은 이제 제법 서로 장난도 치고 물탱크 근처에서도 각자가 좋아하는 자리에서 일광욕을 즐길 만큼 여물어갔다. 온전하게 고양이 구실을 할까 싶던 유난히 작은 막내도 살이 통통 올라 다른 남매들과 비교해도 그리 작아보이진 않았다. 노총각은 가끔씩 담배를 피우다 마주치는 나와 새끼들을 깔끔하게 무시해 주었고 할머니는 우산살이 고장 나서 찌그러진 우산 하나를 던져 주고는 며칠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엄마로 산다는 건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데리고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구하러 다니느라 하루가 부족했다. 또 새끼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이런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가끔씩 먹다 남은 음식을 음식물 수거통에 버리지 않고 해가 질 무렵 옥상에 빨래를 걷으러 가면서 쌀쌀맞은 모습으로 툭툭 던져 주었다.

살가운 모습을 보이면 길냥이인 내가 이대로 눌러앉아 집고양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냉랭한 표정을 짓는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냉랭하고 심통 맞은 표정에 따뜻한 손길, 벌써부터 할머니가 그리웠다. 그러나 할머니의 부재로 불편해진 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찢어서 밥을 구하러 다니느라 바빠진 나보다 이층 새댁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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