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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길냥이와 새댁(4)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01 16:23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요즘에 부쩍 진아를 업고 일층 할머니 집으로 내려와서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하루를 보내던 그녀는 심심함을 참지 못했는지 아니면 습관처럼 종알대는 것을 참지 못했는지 오며가며 하는 얘기가 성에 차지 않는 듯 계단 어귀에 의자를 하나 갖다 놓고 나를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진아가 찡얼댈 때면 업고 이층의 좁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보고 중얼거렸고, 해가 뉘엿뉘엿 져서 어스름해질 때면 어김없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나를 향해서 중얼거렸다. 새댁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난 정말이지 술만 마시면 온 가족을 공포에 몰아넣던 아빠가 너무너무 싫었어. 중3때 아빠가 돌아가시니까 생활은 어려웠지만 마음은 너무 즐거웠다니까? 아니 즐거웠다는 표현은 그래도 아빤데 좀 미안하네......, 엄마랑 맘 편하게 오순도순 살았어.”
“야옹.”
“대학을 그래도 졸업 할걸 그랬나봐. 너, 내가 대학을 몇 년 다닌 줄 알아? 돈이 없으니까 휴학하고 알바하고 휴학하고 알바하고, 도합 6년째야. 으하하하, 내가 6년 다녔다니까 의대라고 생각하지? 의대 아니다. 아하하하.”
“야앙, 야홍.”

새댁은 나의 맞장구에 신이 났는지 잠깐만, 하며 진아가 잠든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 하고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가져와서 의자에 앉더니 시원하게 한모금 들이켰다. 카, 그녀의 맥주마시는 모습을 보니 내 입에 군침이 사르르 돌았다. 오늘은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었다.

“그냥 내가 많이 지쳐있었나봐. 호프집에서 알바하고 있는데 술 배달하던 오빠를 만났어. 그냥, 생소한 경상도 사투리도 좋았고, 무뚝뚝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다정다감해서 울 아빠랑 다른 남자도 있구나 싶었지.”
“야옹.”
“그렇게 일년 넘게 사귀다 진아가 들어섰잖아. 울 엄마는 애 떼고 대학 다시 다니라고 난리난리, 오빠는 자기가 책임 진다고 고향 내려가자고 하는데......, 엄마보단 사랑을 택한거지. 바보같이, 사랑 그거 얼마나 오래간다고, 훗.”

담배 연기를 늘어지게 내 뿜는 그녀를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부모의 반대에도 꿋꿋이 가정을 꾸린 그녀가 대견해 보였다. 그리고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가 생각났다. 새댁의 말이 옳았다. 사랑 그거 얼마나 오래간다고.......

“너 산후우울증이라고 알아?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내가 산후우울증인거 같아. 증상이 아주 똑 같거든. 근데, 너는 산후우울증이 없어? 괜찮아? 아휴, 난 진아 하나도 버거운데 넌 다섯 마리나 되네. 안 힘드니?”
“야옹,, 야아옹.”
“남편은 누구야? 니 새끼들 아빠.”
“야옹,,,홍. 야오옹.”
“하긴 뭐, 아빠가 누군지 알 수나 있겠냐.”
“야옹,, 야항.”
“너 여자한테는 촉이 있다. 요즘 오빠가 이상해. 핸드폰도 잘 안 받고, 퇴근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집에 와도 진아 예뻐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방에 밖혀서 컴퓨터로 게임만 하고, 오빠랑 언제 섹스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녀가 던지는 질문들에 새끼 다섯 마리를 먹이느라 산후우울증을 이야기할 짬도 없고, 내가 아무리 길냥이지만 지조는 있으며 내 새끼의 아빠는 셋째와 똑같이 생긴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남자였다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보지만 새댁에게 들리는 것은 ‘야옹’ 뿐일 것이다.

새댁은 혼자 중얼거리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옆집 총각과 눈이 마주치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숨기면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꽤 며칠 동안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할머니의 부재로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나는 새끼들이 모두 잠든 후 발길이 닿는 대로 터덜터덜 걷는 걸 좋아했다.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가 없이 육아와 생계를 책임지느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던 나에게 산후우울증이 급하게 몰려오는 듯 가슴 한켠이 퀭해졌다. 이런 게 새댁이 말한 산후우울증이라는 건가? 늘 그렇듯 담장 사이사이를 익숙한 듯 옮겨 다녔다. 우리 집과 두세 골목 떨어진 초록 대문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격정적으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랑을 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아예 대문 위 조그만 화단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그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를 생각하며 부러운 듯 그들을 보고 있다가 그만 깜짝 놀라 옆에 있던 화분을 쓰러뜨릴 뻔 했다. 키스를 끝내고 여자의 볼과 머리칼을 쓰다듬는 남자는 다름 아닌 새댁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야옹,, 양,,, 야항!”

그만둬! 가정 있는 남자가 뭐하는 거야? 너만 바라보는 새댁과 꼼지락대는 진아를 생각해야지! 어느덧 나의 친구가 되어버린 새댁을 걱정하는 마음에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그러나 나의 ‘야옹’ 소리에 여자는 깜짝 놀라서 새댁의 남편 품을 교태를 부리며 파고들었고 새댁의 남편은 귀엽다는 듯 또 다시 그녀의 목덜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방해하려던 나의 외침이 오히려 그들을 엮어주는 셈이 되었다.

실루엣으로만 보던 아름답던 모습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쾌해 보였다. 동시에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가 하얀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까만 고양이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배신감이 다시 한 번 몰려와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모조리 핥은 다음 새벽 내내 거리를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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