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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길냥이와 새댁(5)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18 08:46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새댁 집에서 흘러나오는 싸움 소리를 먹고 크는 것처럼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이젠 새끼들이 제법 커져서 먹을 것을 물어 나르는 것도 힘에 겨웠다. 하나 둘씩 데리고 다니며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찢는 방법이나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탈이 나는 것, 난데없이 날아드는 캔이나 돌멩이를 대하는 요령, 집을 잘 찾아오는 방법 등을 가르치다보면 하루가 금방 저물었다.

내가 무엇보다 깐깐하게 교육하는 것은 안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품에서 야옹, 야옹만 하며 살아가기엔 영혼이 자유로운 길냥이기 때문에 자유분방하다는 사치를 누리려면 그 만큼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도처에 위험한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목숨을 위협했다. 사실 우리들의 수명은 집고양이보다도 훨씬 짧다.

특히나 고양이가 나트륨을 내보낼 수 있는 곳은 발바닥뿐인데, 누군가의 손길을 포기한 우리들은 염분이 많이 들어간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량의 나트륨 섭취가 생명 단축의 지름길이란 것을 알면서도 입맛이 길들여지다 보면 아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냉정한 길냥이의 현실이라면 먹거리는 둘째치고 새끼들에게 위험에 대한 안전개념을 가르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으며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 작게 태어나서 신경이 쓰였던 막내도 남매들과 잘 어울렸지만 여전히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고민을 아주 안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곳에 계속 머물러서 집고양이가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물론 할머니가 고급 귀족냥이 들이 먹는 무염 음식이나 값비싼 사료를 주지는 않겠지만 끼니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집고양이가 될까 염려해서 냉정한 표정으로 고등어대가리를 툭툭 던져주던 할머니의 마음을 모른 척 하기엔 딸린 식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집고양이가 될 수 없는, 뼛속까지 자유로운 길냥이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내 어미를 떠난 것처럼 내 새끼들도 머리가 크면 스스로 나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내 품에 있는 동안이라도 좀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에서 새끼들을 키우고 싶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새끼 다섯을 키울만한 곳을 알아보느라 발품을 판 덕에 적당한 곳을 알아내었다. 시간마다 버스가 다니고 사람들이 밀집한 이런 주택가가 아닌 공원과 이어진 산책로에 몇몇 집들이 있는, 좀 더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소담한 곳이었다. 나른한 햇살에 꾸벅 졸고 있어도 괜한 해코지를 당할 리 없고 간혹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맘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런 곳.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험한 세상에 나가기 전에 해야 될 교육을 마무리하면 조만간 보금자리를 옮길 생각이다.

새댁은 줄기차게 싸웠다. 우당탕탕 집기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 큰 싸움이 아니면 신경질적으로 쫑알거리는 새댁목소리와 대꾸하기 싫다는 듯 굵직한 소리로 말을 뚝뚝 자르며 고함을 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싸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아는 깊은 잠을 자서 애지간하면 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의 둘째, 얼룩하나 없이 누런 누랭이처럼 진아는 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댁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저번에 내가 봤던 애정행각을 새댁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죄책감은커녕 대범하게도 세탁소 할머니의 담벼락에서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준비한 이별파티에 참석하러 폐가로 향하던 찰나였다. 남편이란 작자의 행태를 어이없게 보고 있는 순간 새댁이 담배하나를 들고 이층계단으로 나와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야옹,, 야옹..”
“들어가, 들어가란 말이야. 니가 봐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라고 소리쳤지만 오히려 내가 새댁을 대문 쪽으로 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새댁은 가로등 불빛에 남편 얼굴이 비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남편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서 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순간에도 키스에 심취하고 있던 남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남편은 뻔뻔하게 새댁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는커녕 새 여자 친구가 놀랬겠다며 새댁을 타박했다. 남편이란 작자는 새댁은 안중에도 없이 여자 친구만 챙기기 바빴고 여자 친구도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새댁에게 퉁박을 주며 여자 친구를 바래다주고 온다며 길을 나서는 남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새댁은 그 길로, 십분도 더 망설이지 않고 짐을 챙겼다.

"진아 짐도 챙겼어, 근데 짐이 너무 많아.......내가 그 짐들을 들고, 진아까지 들쳐 메고 아무리 생각해도 갈 데가 없잖아. 아래층 할머니한테 가는 건 가출도 아니야.
엄마한테 이 꼴로 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직해. 저 놈이 남편이란 사실은 망각해도 아빠란 사실을 안다면, 적어도 인간이라면 자기 핏줄인데 진아를 잘 키울 거라 믿어. 나 간다. 진아는 밤에 잘 자니까 괜찮을 거야.”
“야옹,, 양,,, 야옹.‘
아직 아기야.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라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새댁은 여행용 트렁그를 내려 놓고 한동안 말 없이 서 있었다.

“진아를 나 혼자 만들었니? 내가 살자고 했어? 같이 내려와서 살자고 한 사람은 오빠라구! 저런 무책임한 바람둥인 줄 몰랐단 말야. 흐흑, 아 진짜! 미칠 거 같아. 확 죽어버릴까?”
“야옹, 야오옹, 야앙.”
가지마,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생각이 바뀔 거야. 들어가서 맥주라도 가지고 나올래? 내가 옆에 있어줄게라고 위로했다. 새댁은 눈물을 훔치며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발을 동동거리며 말했다.

“어쩌라고,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가는 거야.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다시 여기를 못 떠날까봐.”
“야옹, 옹......, 야잉.”
그래, 그러니까 한번만 더 참아 보자. 내가 널 알아. 넌 자식을 버릴 만큼 모질지 않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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