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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길냥이와 새댁(마지막회)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18 08:51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대상 허선영(단편소설)

새댁은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터질 것 같은 배낭을 끌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댁은 심호흡을 두세 번 하더니 계단을 내려가서 찻길로 향했다. 나는 새댁을 위로하느라 지껄이는 말들은 더 이상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냥 새댁의 옆을 조용히 따라 걸었다. 새댁은 나를 경계하지 않았고 마치 배웅을 받는 듯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댁의 남편은 평상시 인사도 잘 안하던 할머니에게 진아를 부탁했다. 아니 어쩌면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급하긴 급했는지 어린이집 구할 때 까지만 낮에만 할머니가 좀 봐달라고 했다. 그나마 양심은 남아서 사례는 한다며.......

“저렇게 바람피운 여자 금방 싫증난데이. 고마 자식 나준 조강지처가 젤인기라.”
“네, 네......”
“새 여자가 진아 키와준다 카더나? 키와 줄 거 같나? 암껏도 모리는 진아는 또 뭔 죄고, 당장 나는 무신 죄고?”

할머니의 타박에도 형식적인 인사만을 하며 억지로 진아를 떠넘기고 새댁의 남편은 집을 나섰다. 문득 황갈색 얼룩과 높게 솟은 꼬리가 기품이 있는 그가 떠올랐다. 저렇게 사랑에 지쳐 서로를 들들 볶기 전에 미련의 여지없이 훌쩍 떠나버린 그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여자 친구는 간단히 짐을 꾸려 새댁의 집으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그 여자가 한 일은 진아를 못 보겠다며 남편에게 온갖 투정을 부리다가 이삿짐을 정리하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 눈빛이 기분 나쁘다며 마시던 맥주캔을 던진 일이었다. 새댁이 그리웠다. 낯선 여자가 싫어서라기보다 진심으로 새댁이 걱정되고 보고 싶었다.

새끼들은 어서 빨리 이사를 가자고 나를 보챘다. 이사를 가기로 한 날보다 이틀이 더 흘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새댁이 다시 나타나는 걸 보고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새끼들을 설득했고 새끼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자신들을 귀여워해주던 새댁이 역시나 궁금했는지 못이기는 척 내 맘을 이해해줬다. 새끼들과 새로 이사할 동네를 둘러보고 돌아온 늦은 오후에 왁자지껄한 아래층에서 새댁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한걸음으로 담을 타고 올라가 할머니 집을 내려다보았다. 울고 있는 새댁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가 힘겹게 안아서 울음을 달래고 있는 진아를 가운데 두고 남편과 새댁은 서로에게 사랑에 배신당한 저주를 쏟아내었다. 진아의 양육문제를 두고는 남편의 부모와 새댁의 엄마도 핏대를 세우며 서로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새끼들은 들떠있었다. 약속대로 새댁을 다시 보았으니 새로운 동네로 어서 가자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앞장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짐이랄 것도 없었다. 길냥이인 우리는 건강한 몸만 있으면 됐으니까....... 새댁의 엄마는 아래층에서 할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새댁은 혼자서 진아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한참을 부스럭대다가 새댁이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매일 수다를 떨던 의자에 걸터앉았다.

“야옹,, 야옹,,양.”
나도 반가움에 새댁에게로 걸어가서 꼬리를 흔들며 마주 앉았다.
“밤마다 진아 울음소리가 들렸어. 오빠랑 그년이 진아를 괴롭히고 진아는 더 자지러지게 울고, 엄마 소리도 못하는 진아가 엄마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흑흑....... 너무 괴로웠어.”
“양,, 야옹.”
“낮에는 또 진아 웃음소리만 들리는거야. 우쭈쭈, 우쭈쭈하면 까르르 웃던 진아 목소리. 넌 알지? 진아가 얼마나 잘 웃고 순한지. 웃음소리 울음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후....... 이러다가 미친년 될 거 같더라. 미친년보단 미혼모가 백배는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진아 내가 키운다고 했더니 엄마는 미친년, 정신 나간 년이라며 평생 고생하기 싫으면 지금 잠깐만 눈 찔끔 감고 참으래.”
“야옹, 야앙.”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니? 연애하고 임신하고 진아 낳고 다해서 3년도 채 안됐어. 이 짧은 시간 행복하려고 내가 오빠랑 사랑한건 아닌데 말이야. 근데 정말 나도 모르겠어. 이제 기어 다니는 진아를 데리고 평생 혼자 살 자신이,,, 사실은,,, 없어.”
“말하지 않아도 니맘 잘 알아.”

새댁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발로 끄며 지금까지 본 수많은 울음 중에서 가장 서럽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어서 가자며 종종거리는 새끼들의 성화에도 조용히 새댁 옆으로 걸어왔다. 내가 옆으로 다가오자 새댁은 서러움의 보따리가 툭 터진 것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그 슬픔의 무게를 알기에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한동안 새댁의 발등을 혀로 핥아주며 울고 있는 그녀 곁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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