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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칼럼> 완행인생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22 08:11

이진희 목사/달라스 웨슬리교회 담임

오래 전에 본 영화 가운데 계속 뛰기만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노예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람인데, 뛰지 않으면 붙잡혀 죽게 되니까 죽어라고 뛰는 것이다. 그렇게 뛰는 장면이 30분, 40분도 더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을 보는 내내 나도 숨이 찬 느낌이었다.

칸느 영화제에서 단편 최우수상을 받았던 <완행열차>라는 단편 영화가 있다. 한 남자가 출근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그런데 타고 보니 그가 내려야 할 역에 서지 않는 급행이었다. 남자가 기관사를 찾아가 사정을 한다. 회사에서 지각이 잦다고 두 번씩이나 경고를 받았는데 오늘마저 지각하면 잘릴 것이라고 하면서 역에서 잠깐 세워달라고 사정을 한다.

딱한 사정을 듣고는 기관사가 정차는 할 수 없지만 속도를 줄여줄 테니 내리라고 했다. 그가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지자 시속 10마일로 속도를 줄여 주었다. 그 남자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열차는 서서히 속력을 더해가면서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린 그 사람도 감사하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면서 앞으로 같이 뛰어갔다. 그러자 뒷 칸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잽싸게 그의 목덜미를 잡아서 기차 안으로 가까스로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 했습니다.” 급행열차에서 내리기가 쉽다. 내려도 또 타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어떤 기관사는 기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멋있는 풍경이 나오면 속도도 늦추어주고 기적도 울려주고 그런다고 하는데,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인생을 아는 사람이다. 멋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완행 열차가 없어졌다고 한다. 간이역도 없어지고. 왜 우리가 완행 인생을 살지 못하고 질주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왜 그렇게 죽어라고 달려가는가? 1% 안에 들기 위해? 1% 안에 들어야만 성공하는 것인가? 1% 안에 들기 위해 인생의 99%를 투자하지 말라. 그래도 못 들어간다. 왜 1% 안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성지 순례를 가면 시내산에 오르게 된다.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시내산 정상을 향해 4-5시간 올라간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여기저기서 빨리 올라와 빨리 내려와 하는 소리들이 울려퍼진다. 시내산에서 가이드를 하며 사는 베두인들도 “빨리”라는 말을 다 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 천사가 보호해준다. 그런데 왜 사고가 생기는가? 너무 빨리 달려서 천사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스프링복이라고 하는 아주 예쁘게 생긴 영양들이 있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데,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다른 놈이 앞으로 간다. 그러면 나도 질세라 그놈보다 앞에 가서 풀을 뜯는다. 그러면 다른 놈이 또 앞으로 오는 것이다. 한두마리가 아니라 수십마리 수백마리 수천마리가 그렇게 하다보면 나중에는 풀도 뜯지 않고 서로 앞으로만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앞다투어 뛰게 된다. 그러면 다른 놈들도 같이 뛴다. 그렇게 질주하다보니까 낭떠러지가 있다. 서야 하는데 갑자기 서지지를 않는다. 그런데 뒤에서는 계속 수천마리가 달려온다. 

그래서 수십마리 수백마리의 영양들이 벼랑에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왜 뛰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냥 이기기 위해서, 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뛰는 것이다. 

목표도 없이 뛰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 무리 가운데 섞여서 지금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고용해서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서둘렀기 때문에 일정보다 탐험이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나흘째가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아무도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
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우리 몸을 따라잡지를 못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영혼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사흘 이상 영혼이 우리 몸에서 떨어져 있으면 큰 일 납니다.”

은퇴를 1년 앞둔 어느 미국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를 회상하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나열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리스트들이 올라가 있다. 나는 즐겁게 일할 것이다. 나는 놀 것이다. 나는 웃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고 웃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밤에 잘 것이다. 나는 춤을 출 것이다. 나는 딸기를 딸 것이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하여 시간을 낼 것이다. 세상을 혼자 다 구원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아니면 교회가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렇게 일만 하는 그런 목사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바쁘게 사셨지만, 그러나 느긋함을 잃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의욕으로 가득 찼지만, 그러나 시간에 쫓기는 법이 없었다. 예수님은 우리들처럼 불안하고 바쁘게 돌진하는 인생을 살지 않으셨다. 그분은 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분은 결코 쫓기듯이 살지 않으셨다. 목표를 향해 가실 때에도 지름길로만 가지 않으시고 멀리 돌아가실 때도 많았다. 예수님도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살기는 하셨지만, 그러나 목표만을 향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런 인생을 살지는 않으셨다.

좀 더 느린 발걸음으로 인생을 살아 보라.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 보라. 그만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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