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마음을 읽는 책장]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절정’의 시기다. 말 그대로 요즘은 절정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인생의 절정이라는 중년을 통과하고 있고, 마침 계절 또한 봄의 절정을 향해 간다. 꽃의 절정은 활짝 피었을 때, 낙화 직전이다. 절정을 지속하는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바람결에 푸르르 흩어져버리기에 절정이 더욱 비장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수만 그루의 벚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일본 나라현 요시노야마에는 늘 이맘때마다 사람이 붐빈다. 그야말로 꽃도 절정, 관광객도 절정이다. 우리는 늘 꽃이 만개했을 때에만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벚나무를 바라봐준다.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건, 기껏해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다.

벚나무는 앙상했을 때나, 푸르를 때나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후엔 단풍이 든다.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선명하진 않고, 약간 은은한 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은 벚나무에 단풍이 드는지조차 모른다. 짧은 순간 틔운 화려한 꽃에 주목받고 나머지는 유별날 것도 없는 초록의 잎으로 살아가는 벚나무의 운명이 새삼 처연하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잎마저 일찍 떨어져 버리는 봄나무는 묘한 슬픔이 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사진)에서 우타노 쇼고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꽃을 보고 싶은 녀석은 꽃을 보며 신나게 떠들면 된다. 인생에는 그런 계절도 있다. 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금도 벚나무는 살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벚나무 이파리는 찬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황금시대는 흘러가 버린 무지한 젊은 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미래에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나루세. 그가 뺑소니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사건의 배후에 있는 호라이 클럽이라는 다단계회사를 조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꼬여만 간다. 나루세는 탐정사무소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호라이클럽 실체에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물품 사기가 아니라 노인 명의로 보험에 가입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보험 살인임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나루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지를 발휘해 그를 구해주고, 반대로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한 여자가 나온다. 이름은 사쿠라. 벚꽃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하룻밤 비바람에 지고 마는 이름처럼 사쿠라는 나루세에게 강렬한 그리움을 남기고 떠난다.

인생의 계절을 이야기하면서 소설이 끌어다 쓴 소재는 ‘노인 사기’. 깃털 이불이라던가, 호라이 생명수라던가 세 살짜리 아이도 코웃음 칠 만한 뻔한 사기에 속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끔 뉴스에서 보긴 했다. 시골 순박한 어르신을 상대로 혈액순환에 좋다는 누에고치를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판 악덕 업자들이 알고 보니 솜사탕 덩어리를 누에고치환으로 둔갑시킨 것이더라, 하는 뉴스들. 파는 사람도 문제지만 속는 사람이 더 문제가 아닐까 싶은 그런 황당한 사기극이 속속 보도되는 것을 보면 소설 속 설정도 그리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는다. 절정의 계절을 이미 지나 보내고 그저 곡식만 축내고 있는 사회 짐으로 전락했다는 죄책감에 나약해진 노인들은 간이고 쓸개고 빼다 줄 것 같은 그들의 가식적인 따스함에 속아 넘어간다.

나이 듦과 늙음,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의외로 단단하다. 뭐든지 다 이해해줄 것만 같은 세대, 주책스럽게 나서지 말고 너그러운 미소로 삶을 해탈해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나 모험은 젊음의 전용물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늙든 젊든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며 소중하다.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다룬 이야기인가 싶지만 사실 이 소설 장르는 ‘미스터리 추리’로 정의된다. 더욱이 제목은 달콤한 로맨스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도무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소재와 장르가 어떻게 버무려져 반전 효과를 주는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다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고 늙어가게 될까? 나는 가끔 스무 살의 나와 일흔 살의 내가 뭐가 다른지 생각해본다.’는 책 속 본문으로 대신한다.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