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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중용(中庸)의 마음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8/08 19:34

중용(中庸)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나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어떤 것에 대하여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중심에서 서로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우려되는 것은 사회가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 지난번 대한민국의 촛불과 태극기 시위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을 모두가 느꼈을 터이기에 고민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런 극단적인 사회적 분열은 사회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요즘 국가주의, 민족주의, 좌파, 우파라는 말을 사용해서 편을 가르고, 그 안에 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으로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확히 틀린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어느 한쪽에만 온전히 동의하지도 않고, 어느 한 곳 속하는 것도 불편하다. 이런 극단적 현상들이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것을 보여준다.

한동안 세계가 하나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한 세상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손을 맞잡고 글로벌한 세상을 기대하였다. 이렇게 손을 잡아야 한다. 서로 생각과 사상,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여기에 중용의 정신이 담겨 있다. 중용은 평화를 이루는 정신이다. 내가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내 생각과 믿음이 좋다면 남의 생각과 믿음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상식을 깨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평화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중용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손잡고 이해와 화해를 먼저 생각하고 아우르는 넓은 가슴을 준비해야 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짧은 인생을 사랑만으로 채우려 해도 세월이 부족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는 어느 극단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존중하며 사는 사람이 더 많고, 그들은 세상의 상식과 평화를 이루는 중심된 구성원이다. 교회적으로는 16세기 영국교회 개혁 시기에 신·구교 싸움으로 많은 희생과 갈등을 겪으면서 교회가 화해와 평화를 찾던 중, 중용의 정신을 따라 신·구교를 아우르는 중용의 신앙을 추구하는 성공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성공회의 전통이 되었다.

중용의 마음을 가지려면 스스로 성찰과 수련을 해야 유지할 수 있다. 너그러움과 용서와 이해는 중용의 정신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덕목이다. 신앙인으로서 생각해본다. 종교를 가지고 기도하며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 이웃과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하며 다툰다면, 신앙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더불어 평화를 이루어 하늘나라를 우리 안에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과 평화가 절실하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나의 것만 주장해서 분열하기보다는 모두를 감싸 안는 중용의 정신이 퍼지기를 바란다. 그 안에서 평화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 프란치스코의 기도의 서두를 적어본다.“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이완홍 신부/메릴랜드 성공회 성요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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