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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너도 나처럼 아팠구나

"스님,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셨습니다. 혹시 최근에 너무 바쁘게 지내신 거 아닌가요?" 역시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진맥만 짚어봐도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한의사 선생님은 금방 아셨다. 오른쪽 이마와 귀밑이 아파서 침을 맞으러 갔더니 한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과로해 그렇다며 침을 놓으시면서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 작년 연말에 마음치유학교의 여러 일과 강연 약속들을 지키느라 감기를 달고 살았다. 감기가 나을 만하니까 이번엔 알레르기 반응과 두통이 찾아왔다.

그런데 몸이 아파보면 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은 채 앞만 보며 돌진했던 사람도 몸이 아프고 고장 나면 삶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고 바쁘다고 챙기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은 순간이 잠시라도 찾아왔을 때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살아 있다는 것, 아프지 않다는 것, 그것이 기적 같이 느껴지고 이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일상의 순간순간이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병은 우리 인간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몸이 아파 한창 끙끙거릴 무렵, 이해인 수녀님으로부터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기다리는 행복'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에세이를 출간하셨다고 고맙게도 내게 선물해주신 것이다. 암 투병을 하시면서 쓰신 지난 6년간의 글들이 담겨져 있는데 내 몸이 안 좋을 때라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내 잔병치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명랑 투병' 중이시라는 우리 수녀님의 따뜻한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특히 '좋은 환자 되기 위한 십계명'이라는 글 안에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밤, 내가 꿈에서 본 어떤 장면이 잊히질 않습니다. 내가 많은 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나오는데 앞자리에 앉았던 거동이 불편한 환우 한 분이 내게 손을 잡아달라고 청했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한참 기도하며 서 있는데, 그 느낌이 몹시 평화롭고 나 자신도 치유되는 순간을 경험하였습니다. 전혀 친분도 없는 이가 단지 환자라는 이유로 금방 깊이 교감 되는 걸 보면서 나는 팔 년째 투병하는 한 사람의 환자로서 문득 꿈속의 환우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아프기 전에는 아픈 사람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막상 아프면 그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크게 아파본 사람과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건강 때문에 인생이 한번 꺾여본 사람의 눈빛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온화함과 차분함, 이해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즉, 내 아픔으로 인해 다른 생명들을 향한 자비한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연말에는 암 환우들을 위한 마음치유학교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암에 걸리신 분들이 그동안 어디에서도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속내를 마음치유학교에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지지와 위로를 나누는 자리이다.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이십 대 여성이 있었다. "난 아직 어린데, 난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인생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암에 걸렸다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어머니뻘 되는 한 분이 그녀에게 말없이 다가가 등을 감싸 안고 함께 울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할머니뻘 되는 한 분이 또 곁으로 와 함께 우셨다. 곧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녀 곁으로 모여 그녀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인 것처럼 함께 울었다.

영어로 자비 'Compassion'은 '함께 아파한다'라는 뜻이 있단다. 혼자 고립되어 아파하면 그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고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하겠지만, 함께 아파하면 그 고통의 크기도 줄어들고 지혜와 용기도 얻게 된다. 내가 너보다 처지가 나아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알고 보면 너도 나처럼 아팠구나,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자비인 것이다.


혜민스님 /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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