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먼저 가면 길이 된다

사람들은 빨리 가는 길을 좋아한다. 샛길로 가면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길 위에서 허덕일 때,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때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 초발심으로 시작하면 복잡하게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

사람들이 다닌다고 다 길은 아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센터 화단 가운데 길이 뚫렸다. 파킹랏 돌아가기 싫은 누군가가 샛길로 드나들자 너도나도 그 길을 밟고 지나간 거다. 잘 단장된 꽃밭의 꽃나무가 죽어 문드러진 곳에 생겨난 꾸부정하게 휘어진 못난 길. 길이 아닌 곳도 여럿이 함께 밟으면 종국에는 길이 된다.

길이 아닌 길을 따라 생각도 없이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좁은 길 바른 길 옳은 길 곧은 길 따라 행군하는 사람들은 밀려나고 멍청이 요사꾼 사기꾼 도적놈들이 떼지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시대! 안경 끼고 창을 닦아도 샛별 가슴에 달고 희망을 노래하며 좁은 길 담담하게 걸어가는 선인(先人)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파울 클레(1879-1940)의 '고속도로와 샛길들(Highways and Byways)'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반복으로 잘 정비된 고속도로가 가운데 보인다. 바로 그 양쪽으로 난 수많은 샛길들은 삐뚤삐뚤하고 크기가 다르고 불규칙하게 나열돼 있다. 고속도로는 헝클어진 길들 때문에 더 두드려져 보이고 샛길들은 좁고 불안정하며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을 준다. 클레는 '신은 죽었으며 창조자인 예술가가 그 지위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구호로 한 시대를 향유했던 운좋은 화가다.



이 작품은 클림트 뭉크 간딘스키 피카소 모디리아니 등 천재화가들과 비슷한 시대를 공유하며 예술가 혹은 인간이 어떠한 예술의 길과 인생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고속도로와 샛길은 출발은 달랐지만 지평선에서 하나의 '선'으로 만난다. 지평선은 큰 길과 샛길을 담담하게 끌어안는다. 지평선이 머무는 그 어디쯤에서 당당했던 길의 모습도 부질없어 헝클어진 샛길의 고뇌도 사라질 것이다. 길은 그냥 길일 뿐이다. 탄탄대로든 고속도로든 비실비실한 샛길일지라도 길은 길을 만나야 진정한 길이 된다.

중국 문학가요 사상가인 루신(魯迅·노신)의 소설 '고향'의 맨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맺는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게 곧 길이 된 것이다.'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며 중국의 현실을 고발한 소설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불량 학자, 타락한 문인, 위선자, 반동분자, 잡문쟁이, 독설가, 변절자, 돈키호테, 매판, 허무주의자 등 루쉰을 비방하기 위해 고안해 낸 수많은 조롱들을 감수해야 했다. 인생은 길 위의 선택이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고통이 무겁고 힘들어도 먼저 가면 길이 된다.


이기희 / 작가·윈드화랑 대표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