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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03> 북미 식민사7

1585년 4월 드디어 첫 이주민을 실은 5척의 선단이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선단이 항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 카리브 해의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부유한 항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비스킷에는 해충이 들끓기 시작했고 치즈는 거의 썩었으며 식수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어서 물을 마실 때는 벌레들을 걸러내기 위하여 이를 꾹 다문 채로 마셔야 했다.

선단이 아메리카 해안에 거의 도착했을 때 폭풍이 몰아쳐 왔다. 설상가상으로 기함 타이거와 또 한 척의 배가 모래톱에 처박혀서 침몰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 큰 파도를 맞으면서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파도가 배 안으로 들어온 바람에 배에 실렸던 대부분의 식량이 못쓰게 되었고 거기다 식민지에 뿌리러 가져가던 씨앗들이 바닷물에 잠겨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타이거의 침수는 심각한 문제였다. 거의 대부분의 식량이 타이거에 실려 있었는데 모두 못쓰게 되는 바람에 거의 1년이 남은 내년 추수 때까지 버틸 식량이 턱 없이 부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곧 정찰대를 조직하여 일대의 정찰에 나섰고 안내는 인디언인 만테오가 맡았다. 영국인들은 정찰하는 도중 여러 부족의 인디언들을 보았다. 일부는 호의적이었으나 일부는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롤리로부터 인디언을 구타하거나 인디언 여성을 강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라는 명을 받고 있었고 인디언 거주지도 허가 없이 무단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영국인들이 세코탄 마을에 도착했을 때 세코탄 인디오들은 성대한 잔치를 열어 영국인들을 환영했다. 세코탄 인디오들이 영국인들을 좋아해서 파티를 열어 준 것이 아니라 원래 인디오들은 선대부터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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