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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06> 북미 식민사 10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겨울을 지내기에 이주민 숙소는 형편없었고 겨울 옷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대부분 씨앗이 못쓰게 된 데다 파종시기를 놓쳤기에 식량 문제가 심각해졌다.

적은 식량으로 버티다가 인디언들이 수확을 끝낸 후에야 간신히 옥수수와 콩 시금치 해바라기씨 등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부족했고 처음에는 협조적이었던 윙기나도 끊임없는 영국인들의 요구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민 함대의 지휘자 그렌빌 경은 영국 귀환 도중 엄청난 행운을 잡았다. 버뮤다 근해를 항해하고 있을 무렵 에스빠냐 선단에서 이탈한 산타마리아호를 만난 것이었다. 영국 함선은 산타마리아호에 포탄을 퍼부었고 산타마리아호는 즉시 항복했다. 그렌빌이 그 배에서 뺏은 약탈품은 거의 12만 더켓에 육박할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렌빌이 영국에 도착하자 런던 시민들은 그렌빌을 열렬히 환영했다.



아메리카 식민지를 활용하여 에스빠냐 선박의 약탈 기지로 삼을 수 있다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자 식민지 건설에 밝은 전망이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 해부터 영국과 에스빠냐 사이에 험악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에스빠냐는 영국이 자신들의 속령인 네덜란드의 반란을 몰래 지원하고 있어서 속이 불편했다. 또 자국 선박이 수시로 영국 함선의 공격을 받아 약탈당하는 일이 일어나자 화난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약탈 중지를 요청했고 이 요구가 무시당하자 자국 내에 정박 중이던 영국 선박들을 상대로 보복했다.

이 소식에 전 영국민은 분노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스빠냐와의 무역 봉쇄를 지시했으며 공식적으로 에스빠냐 선박에 대한 약탈을 허가했다. 이 조치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중앙교육문화센터 스패니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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