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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학의 숙제 "19세기 교육으로 21세기 학생 못 키운다"

[인사이트]

"지식·논리는 AI가 인간 추월"
현재 학교·대학 모델 붕괴할 것
토플러·프레이 등 미래학자들
"미래 불필요한 지식 외워선 안 돼"



"선생님! 시를 왜 배워야 하죠? 대학 진학엔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월튼 고교의 신참 교사 존 키팅에게 한 학생이 묻습니다. 이 학교는 졸업생의 3분의 2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입시 명문고죠. 그런데 젊은 교사인 키팅은 학생들에게 입시와는 상관없는 문학과 예술을 강조합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진학 준비하기도 바쁜데 왜 자꾸 시를 읊게 하느냐"고 물었죠.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긴 키팅이 말합니다.

"여러분이 목표로 삼는 의사·법조인·정치가 다시 말해 의술과 법·정치 모두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삶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대신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시와 예술은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우린 삶의 목적이 되는 것들을 오히려 방법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 키팅은 학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예이츠(1865~1939) 로버트 헤릭(1591~1674)처럼 당장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인과 작품들을 가르칩니다.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이란 말도 헤릭의 시 '처녀들에게'를 읊으며 나온 말이죠. 그러나 키팅은 명문대 진학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월튼의 교육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이 영화는 1990년 개봉했습니다. 작품 속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이고요. 그러나 영화 속에서 풍자한 학교 모습은 지금의 교육 현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교실은 여전히 입시를 위해 존재하고 수업은 오로지 암기와 지식습득이 주입니다. 키팅의 말처럼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대학 입시에만 매몰돼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잊고 살죠.



산업시대에 맞춰진 학교 체제

물론 이런 교육 방식이 필요한 때도 있었습니다. 다수가 선호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선 먼저 좋은 대학에 가야 했고 입시 성적을 높이려면 시와 예술보다 수학과 영어를 더욱 잘해야 했죠. 아이들의 꿈이 뭐가 됐든 교사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 됐습니다. 평생 살면서 한번 꺼내볼까 말까 한 지식을 십수 년 간 달달 외우게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미래엔 이런 교육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2년 전 고인이 된 앨빈 토플러는 2008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포럼에서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수많은 청소년이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토플러는 그의 책부의 미래에서 현대의 학교 체제는 19세기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학교 체제가 최적화돼 있다는 것이죠. 그는 "공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19세기 학교의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학교 시스템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토플러의 지적이었죠.

물론 산업화 시대엔 이런 교육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산업화가 빨라진 19세기 유럽 사회는 앞다퉈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통교육(의무교육)을 도입합니다.

이는 토플러의 말처럼 산업혁명이 불러온 새로운 사회 구조에 필요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교육이었습니다.

일제 강점이 끝나고 한국전쟁의 참사를 겪은 한국 역시 사정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산업화를 겪은 유럽과 달리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압축적으로 이 모든 걸 경험해야 했죠. 그 핵심 성공 요인 중 하나가 교육이었습니다. 교육 덕분에 한국은 산업에 필요한 노동자를 빨리 양성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죠. 그 덕분에 각 분야의 선두주자들을 따라잡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다가오는 학교의 종말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스탠퍼드대의 CTO(최고기술책임자) 폴 킴 교수는 "혁신기술이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엔 과거처럼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상상력과 자율성을 키우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의 말처럼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의 역량은 20세기와 전혀 다릅니다. 지식과 정보를 빨리 습득하고 객관식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이 산업사회에선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앞으로 AI가 훨씬 월등할 것입니다.

실제로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398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 중 84.7%는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낫거나 같을 것이라 합니다. 지금처럼 암기와 지식습득 위주의 교육으로 양성된 인재는 더는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은 대학입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예측합니다. 지식의 '반감기'가 매우 짧아져 대학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의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나마 지금까진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할 거란 믿음 때문에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젠 그 믿음도 깨지고 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도 이전과 대우가 같지 않고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미네르바 스쿨 같은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 급부상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신생 학교이지만 아이비리그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로 불립니다.

프레이가 2012년 설립한 '마이크로 칼리지'도 그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고 있죠. 이는 3개월 단위의 초단기 집중 학위 과정입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배우려는 정보통신(IT) 인재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프레이는 "10년 후엔 한 사람이 8~10개의 일을 하는 프리랜서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4년 동안 발이 묶여 공부하는 지금의 대학 모델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미래에 필요한 것은 전인교육

그렇다면 앞으로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그 해답에 대해서는 18세기 이전 즉 산업화 이전의 교육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의 교육은 지금과 매우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의 대상이 소수의 지배계층으로 한정됐다는 것이었죠. 이들은 생산 활동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인문과 교양 올바른 매너와 품성 등을 기르는 전인교육이 중심이었습니다.

미래교육 전문가인 미국의 찰스 파델('21세기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박사에 따르면 르네상스 이후 18세기까지 주요 교과목은 독해.작문 수사학 역사 철학 수학 음악 미술 라틴어 등이었습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근세까지 서양 문명사 2000년 동안 주요 교과목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한 노동자를 키우는 데 필요한 교육은 아니었지만 시민적 교양을 갖춘 공동체 구성원을 양성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창의적 과학자.예술가.철학자 등을 배출하는 데 적합한 교육이었죠. 이런 교육 시스템은 르네상스처럼 인간문명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됐습니다.

아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알던 지식의 총량은 평균적인 현대인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대신 그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오늘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겠죠. 다빈치가 만약 현재의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아마도 그가 이룩한 것과 같은 큰 업적을 남기진 못했을 것입니다.

즉 4차 혁명시대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해왔던 노동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도구적 기술만 가르치는 교육은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더욱 창의적인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지적과 같은 맥락이죠. ('노동의 종말')



다시 존 키팅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그는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한 교육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을 부정했습니다. 삶의 목적이 아닌 방식과 도구에만 얽매이는 교육 현실을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표현했죠. 키팅의 문제 의식처럼 미래에는 그동안 우리가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도구적 기술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학교 체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인들이 죽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AI와 대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학교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참스승'이 있어야 하죠. 적어도 지금처럼 공식을 달달 외고 각종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는 형태의 교육을 지속해선 안됩니다.


◆미네르바 스쿨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 스쿨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학이다. 그 대신 샌프란시스코(미국) 베를린(독일) 런던(영국) 등 세계 7개 도시의 기숙사를 돌며 현지 문화와 산업을 배운다. 2016년 306명의 신입생을 뽑는데 1만6000여 명이 지원해 높은 인기를 보였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는 "미네르바 스쿨은 합격률이 1.9%에 불과해 하버드(5.2%) 예일(6.3%) 스탠퍼드대(4.7%)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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