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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세계화 "깊이와 보편성 필요"…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인터뷰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쯤이면 한국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번에는…혹시나 하는 기대다. 매년 고은 시인이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은 시인을 비롯해 서정주, 정호승, 도종환, 천상병, 김광규 등 수많은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해 온 안선재 교수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가 본 노벨 문학상은 너무 편향적이어서다.

그는 “노벨문학상은 일반인들의 대중적인 오피니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노벨상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고은 시인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으니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남들보다 더 클 만도 한데 그는 그 가치를 상에 두지 않는다.



대신 “고은 시인의 시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안 교수는 강조했다.

최근 LA를 방문했던 안선재 교수에게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 애정이 어리지만 쓴소리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수사인 안선재(영국명 브라더 안토니) 교수는 영국 출신으로 1980년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며 3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서강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한국 문학을 영문으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최근에는 서울셀렉션을 통해 정호승 시인의 시집 두 권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와 ‘Though Flowers Fall I Have Never Forgotten You(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를 번역했다.


-이번에도 고은 시인이 노벨상을 못 탔다. 아쉽지는 않나.

"아쉽지 않다.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사람이 좋아하는 어둡고 철학적인 작품들만을 선호한다. 대중들의 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좋은 문학작품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때문에 수상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어떻게 봤나.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봤던 일부 한국 소설은 내게 그리 좋은 이미지를 주지는 않았다. 너무 피상적이고 감성적이었다. 또 한국 작가들은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대해서 쓴다. 보편성이 떨어진다. 너무 한국적이다. 글로벌하게 읽히기 위해서는 깊이와 보편성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번역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



-번역에 있어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한국출판계 번역 환경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번역을 굉장히 무시한다.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 역시 살아있는 문학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근데 제대로 번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영문과 교수들은 대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챕터를 나눠주고 번역을 하게 한다. 그리고 모아서 하나의 책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좋은 책이 나올 수 있겠나.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번역이 잘못된 책이 많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다빈치 코드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몇몇이 읽어보고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그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번역이 되려면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겠나.

"우선 책이 제대로 번역되려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좋은 번역이 나오려면 출판사가 정해진 책을 번역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번역하는 사람이 선택해야한다는 소리다. 번역가가 그 책이 너무 좋아서 번역을 해보고 싶어한다면 얼마나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겠나."



-많은 번역작업을 해 왔다. 번역이 어렵지는 않았나. 특히 시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어는 무척 어렵다. 게다가 3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한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1980년에 한국에 왔는데 수사들은 직접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래서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말이 자신 있다고는 못하겠다. "



-번역을 잘하니까 요청하는 것 아닌가.

"물론 번역은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또 시의 경우 시적인 운율을 최대한 살려서 번역하는 것이 내 특징이다. 또 번역을 위해서는 그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1980년부터 37년째 살면서 한국에 살아온 것이 시를 제대로 번역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수많은 작품을 번역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신경림 시인의 '농무'다. 시집은 '내'가 아닌 '우리'를 통해 시대적인 목소리를 반영했다. 한때는 비평가들로부터 빨갱이라고 내몰리기도 했지만 시는 가난한 농민들에 대한 모습을 '한'보다는 '흥'을 통해 잘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도 번역작업을 계속할 생각인가.

"지금도 고은 시인의 책을 두 권 더 번역하고 있다. 내후년쯤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은퇴했다. 고향(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

"나는 한국 사람이다. 귀화했다. 돌아갈 계획은 없다. 하지만 만약 나이가 더 들어서 언어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 한국말은 나이 들어서 배웠기 때문에 점점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의사소통이 안 되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오수연 기자 oh.sooye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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